EZ EZViwe

스포츠 보도 "프로만 상대합니다"

스타선수·인기종목 집중…아마추어 '구색 맞추기' 전락

김동원 김동기  2002.03.13 00:00:00

기사프린트

“프로가 아니면 얘기 거리 안되나.”

스포츠 보도와 관련, 언론의 아마추어 홀대 현상에 대한 한 체육부 기자의 자조 섞인 푸념이다. ‘잘 나가는’ 프로 종목은 선수들의 소소한 일상사까지 기사화되는 반면 아마추어 경우엔 올림픽 등 국제 대회가 아니면 단신 처리되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때문에 비인기 종목의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반짝’ 입상할 경우 반복되는 “아마추어 경기에도 관심을 갖자”는 주문은 이제 언론이 먼저 실천해야 할 과제라는 얘기다. 언론의 아마추어 홀대 현상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지난 2000년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한 H 선수는 얼마전 집 근처 식료품점 주인에게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생활하기 많이 힘드시죠?”

훈련으로 거칠어진 H 선수의 손을 보고 식료품점 주인이 막노동 일을 하는 사람으로 지레짐작한 때문이다. H 선수는 평소 잘 알던 한 언론사 체육부 기자에게 이 ‘체험담‘을 전하며 언론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사격기술연구원의 김영현 원장은 언론의 역할을 햇볕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마추어는 음지 식물이 아니다. 언론의 조명을 받아야 클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언론의 푸대접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놨다.

실제 언론의 스포츠 뉴스는 온통 프로, 특히 ‘스타’ 선수 얘기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추어는 구색 맞추기로 단신 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언론재단의 기사검색 서비스 카인즈(KINDS)에 지난 2001년 한해 동안 10개 중앙일간지 체육 면에 게재된 박찬호, 김병현, 박세리, 김미현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프로 ‘스타’ 선수의 이름을 넣어 검색한 결과 모두 1000건이 훨씬 넘었다.(박찬호 1587건 김병현 1036건 박세리 1265건 김미현 1257건)

반면 카인즈에서 같은 기간 10개 중앙일간지 체육면에 사격, 빙상, 펜싱 등 이른바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 이름이 실린 기사 건수를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사격의 경우도 298건에 그쳤다. 빙상과 펜싱이란 검색어로 집계된 기사 건수는 각각 이보다 훨씬 적은 158건과 119건이었다.



박찬호 1500건, 사격 300건

국제대회에서 메달 획득 빈도가 높아 관심을 끈 종목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실격 판정을 받은 김동성 선수의 경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덕에 지난1월과 2월 두 달 동안 10개 중앙일간지 체육면에 실린 249건의 기사(카인즈 검색)에 이름이 올랐다. 그러나 지난 한해 그의 이름이 오른 기사 건수는 고작 83건이었다. 쇼트트랙 종목 자체도 처지는 비슷해 ‘쇼트트랙’이란 낱말로 카인즈 검색한 결과 지난 한해 동안 게재된 기사건수는 올해 1월과 2월 두 달 동안 조사된 554건의 절반 수준인 330건이었다. 국제대회 ‘효자’ 종목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쇼트트랙과 그 종목의 ‘스타’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이 정도이고 보면 다른 종목의 경우는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체육부 기자들은 이런 아마추어 홀대와 프로 편중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여건상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기자는 “독자들의 기사 편식이 심하다. 아마추어 경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인기 프로 종목, 해외에 진출한 스타 선수 얘기가 아니면 신문을 보지 않는다. 신문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제한된 지면과 제한된 취재 인력 아래서 스포츠 전 종목을 골고루 다루고 담당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당연히 독자들이 주로 관심 갖는 종목과 경기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언론사 체육부(스포츠레저부)는 기자들에게 주요 프로 종목을 우선 할당한 다음 그 밖의 아마추어 종목을 담당케 하는 취재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언론 목적의식 노력 절실

스포츠지의 경우 영업 실적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한다. 한 스포츠신문 편집국장은 “1면에 박찬호나 김병현 등 스타 선수 기사가 실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가판 판매율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자의 관심 편중 현상을 주된 원인으로 보는 데 대한 반론도 있다.

한 스포츠레저부 기자는 “프로 종목에 대한 편중 현상이 독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냐 아니면 언론이 조성한 것이냐의 문제는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같은 것”이라며 “언론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마추어 관련 기사 발굴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목적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월드컵 붐과 상승작용을 일으킨 측면이 있긴 하지만 국내 프로축구의 인기가 높아진 데는 언론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박건만 체육부장은 “기자들이 비인기 종목을 취재하기위해 얼마나 움직여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건상 어려움이 있다해도 취재 기자들이 프로 중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마추어 종목에서 좋은 기사를 찾기 위해 현장을 더 뛰어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체육계 인사들도 국내 스포츠의 균형 발전과 각 종목의 유망주 발굴 등을 위해선 언론의 아마추어 종목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대한체육회 박필순 공보실장은 “언론이 아마추어 종목과 경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여론을 환기시켜야 저변 인구도 확대되고 또 그 과정에서 유망한 꿈나무들도 눈에 띌 수 있는 것”이라며 “프로 경기에 편중된 언론의 보도태도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 won@journalist.or.kr

김동기 기자 tongky21@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