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은 남기자들보다 훨씬 높다. 육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면 여기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안타까운 사태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8월 열린 ‘2001 여기자 대회’에서는 언론사와 언론관련 단체에서 직장 탁아를 도입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육아는 더 이상 여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남녀가 공동으로 육아를 책임지는 문화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언론은 여성 인권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지적하는 사설과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8일자 사설에서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만이 21세기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아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영아 보육시설 확충과 직장여성을 위한 야간 보육체계를 실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국내 기업에 취업한 여성 인력의 평균 재직 기간이 4.3년에 불과할 정도로 육아 문제는 심각하다”며 “보육은 국가의 근간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언론들은 여성 인력 활용을 강조하며 보육문제에 있어서의 정부 역할을 지적하고 있으나 자사 여기자들의 보육 실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현재 직장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언론사는 KBS가 유일하다. 지난 97년 어린이집을 설치했던 영남일보는 지난해 초 수탁 아동이 크게 줄어 철수했고, SBS는 목동 신사옥에 탁아방을 설치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현재 법적으로 직장 보육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곳은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이다. 언론사 가운데 이러한 조건에 해당되는 곳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법적 의무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직장 보육시설 200여곳 가운데 70∼80%가 법적 의무 없는 사업장이라는 점은 언론사들도 곱씹어 볼 대목이라는 지적이 높다.
노동부 여성교용지원과 한 감독관은 “법적 의무를 따지기 보다 여성을 장기 근속인력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를 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단독 운영이 어렵다면 인근에 있는 여러 회사가 공동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면부담도 줄고 수탁 아동 확보도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 인력이 장기 근속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보육시설에 드는 비용은 그리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근로자 100인 이상의 언론사는 보육시설 신축시 고용보험에서 최대 3억원까지 융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자도 연 3.5%로 저렴하다. 또 보육교사 1인당 월 65만원의 인건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언론사에서 보육시설을 설치할 경우 무엇보다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과 휴일근무 등 언론사 특성에 맞는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실제 영남일보의 경우 “기자 업무 특성에 맞게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 있어 좋았다”는 여기자들의 평가가 많았다.
한 신문사 여기자는 “여기자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언론사도 더 이상 육아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선 안된다”며 “언론사가 정부의 각종 지원 혜택을 적극 활용하고 밀집된 지역별로 공동 보육시설을 만든다면 여기자 뿐만 아니라 남기자들도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