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획 ‘업그레이드 코리아’ 여덟번째 ‘시위, 남에게 피해 없게’는 우선 난데없다. ‘불법폭력 과격시위’가 최근에 거의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썼는지 모르겠다. 오비이락인가, 경찰청과 행자부를 거쳐 정부가 중앙일보 기사 직후 1인 시위까지 봉쇄하겠다는 무모한 집시법 개정 발표를 내놓은 것은? 어쨌든 난데없다.
두번에 걸친 기사 내용은 한 마디로 파쇼국가로 돌아가자는 얘기였다. 시민 불편론+경제손실론+공권력 허약론=집회시위 봉쇄론이었다. 보도 첫날 균형을 맞출 것이라던 얘기와 달리 시위대들을 사회의 병균처럼 그리면서 허약한 공권력을 질타하며 끝맺었다. 시민 불편과 경제 손실이 따르는 걸 누구나 알지만 왜 헌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지는 애써 외면한 중앙일보 기사는 말초신경은 자극했어도 깊이는 얕았다.
충돌과정에서 부상당한 경찰관 얘기는 흘러 넘치지만 경찰에게 폭행 당한 수많은 시민들, 폭력진압 과정에서 유산한 호텔롯데 여성 노조원, 경찰에 두들겨 맞아 정신이상이 된 대우차 노조원들의 얘기는 몰라서 안 실었는가? 시위현장을 지켜봤을 수많은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들 대신 경찰을 기자로 채용했는가? 균형 잃은 잣대를 들고 최루탄 물대포를 왜 안 쏘는가, 다 때려잡아라…. 소름 끼치는 결론, 업그레이드 해서 세울 나라가 결국 파쇼 코리아인가?
지금의 집회시위 문화에 책임이 큰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 자신에 대한 성찰은 왜 없는가. 어느 때 한 번 민주 편에 선 적 없는 신문이 ‘80년대 후반까지 시위는 민주화 상징이었다’는 자기반성인지 자기부정인지 알 듯 말 듯한 대목만 있을 뿐이다.
집회시위로 나선 사람들, 특히 도심시위는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다. 가족을 거느린 30∼50대가 시위 주인공으로 등장한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그들이 왜 도심으로 나오는지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어떻게 사회갈등의 원인을 헤아리고 대안을 낼 수 있을까? 외환위기 뒤에 더 많은 재산을 불린 사람들이 양주 들이키며 나눈 대화록이라면 모를까, 무너진 중산층을 포함해 내일은 커녕 오늘 당장 삶이 불안한 대다수 서민들도 함께 ‘업그레이드’ 하기는 어려운 기사였다.
기본 못갖춘 4·3 보도…희생자 입장 외면
이지훈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최근 동계올림픽 때 과장된 몸짓으로 김동성선수의 금메달을 가로챈 미국 선수 오노를 빗대어 ‘오노스럽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제주도민 3만여명이 군·경 토벌대에게 무차별 학살당한 ‘제주4·3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오노’가 떠올라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지난 3월 14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는 “4·3사태 발발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 간부와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적극적으로 대항한 무장대의 수괴급 등은 명예회복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희생자 선정기준을 확정했다. 아직 진상규명이 되기 전임에도 자의적인 평가에 입각한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침통해 있던 제주도민들은 3월 15일자부터 보도된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짜 조선일보는 ‘군경 살해·방화범도 명예회복 포함 논란’ 이라는, 매우 선정적인 제목 아래 이 결정이 “당시 진압에 나섰던 군과 경찰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며 1면과 5면에 ‘우익’을 선동하는 보도를 했다. 조선일보는 16일자에도 역시 2개 면에 걸쳐 관련기사를 실었는데, 그 내용이란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가 위원회의 결정을 비난하는 성명서 소개가 고작이었다. 특히 이날 기사의 압권은 이번 결정에 대한 장관급 위원들의 강요된 의견 나열이었다. ‘공격 타깃을 선별하려 하니 네 색깔을 밝히라’는 말이다.
필자는 이번 일련의 기사를 도맡아 쓴 해당기자와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한가지 지적과 함께 간곡한 호소를 하고자 한다. 희생자 선정 기준안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유족의 입장은 단 한마디도 반영하지 않은 채 가해자의 한 축인 군 출신 인사의 일방적 주장만을 싣는 것은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도 전혀 기본을 갖추지 못한 편파적인 기사이다.
제주4·3사건 때 제주도민들은 젖먹이에서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희생이 되었고, 유족들은 50여년간 한 맺힌 세월을 살아왔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기를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