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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3국

손석민  2002.03.20 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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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한국기자상 수상 덕분에 스칸디나비아(이하 스칸) 3국을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됐다. 끝없이 펼쳐진 원시림과 오로라, 피요르드 등 천혜의 자연과 함께 지상 최고 수준의 사회복지 체계로 유명한 나라들이다.

시차가 가져다 줄 고통을 걱정하며 14명의 연수단원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내렸다. 인천공항을 떠난지 9시간만이지만 한국과의 시차를 감안하면 16시간이 걸린 셈이다. 핀란드는 전 국토의 절반 이상이 호수로 이뤄진 나라이자 산타클로스 및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고향이다. 우리에게는 사우나로 친숙한데 실제 이 나라의 사우나 시설은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뜨거운 증기를 얻는 것에 불과,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비교가 안됐다.

첫 일정은 헬싱키 시내에 위치한 노인회관과 문화센터 방문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문화시설을 주민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제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인회관에는 시니어들이 모여 에어로빅과 영어 강습을 받고 있었고 문화센터에는 학교에 있어야 할 청소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암벽을 뚫어 만든 수영장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종일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말로는 이 모든 시설이 국가가 아닌 자치단체의 비용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바이킹의 나라인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도 사람들의 여유는 곳곳에서 묻어났다.(주:민족적으로 이들 나라는 핀족이 주류인 핀란드보다 덴마크와 가깝다) 모든 관공서와 상점이 오후 4∼5시면 문을 닫는 탓에 일과 술에 중독된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또한 주말에는 일제히 교외의 히테(Hitter)라고 불리는 개인 별장이나 리조트에서 가족들과 여가를 즐긴다고 했다.

물론 스칸 3국의 여유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되는 각종 연금과 휴가에 기인한 것이 크다.(주:최근 들어 이들도 경제적 부담 탓에 사회보장의 폭을 줄이려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유는 기본적으로 ‘느림’과 ‘기다림’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인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폭설과 한파를 1년의 절반 이상 견뎌야하는 국민들에게 ‘빨리빨리’는 천성적으로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연수단은 실제로 노르웨이 최대인 송네(Sogne) 피요르드를 구경하려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에 묶여 12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했다.

또한 우리보다 2배 이상의 소득수준에도 불구하고 사치를 모르는 생활자세도 눈에 띄었다. 이들의 의식주는 화려함이나 겉치레와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도심에서 화장을 한 여성은 10명 중 1명도 안됐다.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나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사도 각각 수상자의 사진과 나치로부터의 해방을 그린 벽화 등이 실내장식의 전부였다.

스칸 3국 여행은 이동거리가 상당한 탓에 그만큼의 체력소모를 요구했다. 또한 한국보다 최고 2.5배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 나라는 우리가 더 이상 미덕으로 간직하지 못하는 삶의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람의 소득이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