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범죄보도가 선정적으로 흐르면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치정에 얽힌 범죄’ 또는 ‘불륜관계에 의한 살인’ ‘마약 복용 가능성’ 등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독자의 눈길을 끌만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피해자를 두 번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근 피살된 채 발견된 여대생 살인사건을 보도하면서 ‘치정범죄’ 가능성을 부각하고 이 여대생의 남자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대한매일은 지난 19일자 사회면에 ‘피살 여대생 치정 범죄 추정’이라는 제목으로 “이종사촌 오빠이자 모 법원 판사인 A씨와 불륜관계에 빠진 것으로 A씨의 장모로부터 의심을 받는 등 정신적인 고통이 심했다”고 경찰의 말을 빌어 보도했다. 대한매일은 또 “하씨가 사법고시를 준비중인 대학생 B씨를 사귀었으며, 한편으로는 A씨의 소개로 C변호사를 만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며 하씨의 남자관계를 자세히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21일자 ‘의문의 여대생 H양 살해사건’에서 ‘용의선상의 세 남자’라는 중간제목 하에 A, B, C의 남자를 차례로 만난 과정과 헤어진 경위 등을 소개했다. 이외에 한국일보 등 상당수 신문이 “하씨가 최근 주변 기혼남의 장모로부터 불륜을 의심받아 협박을 당하기도 하는 등 남자문제로 크게 고민해왔다”는 경찰의 말을 인용, 치정에 얽힌 살인으로 몰아갔다. 또 동아일보는 이 여대생의 성과 함께 학교와 학과, 학년까지 적시해 사실상 인적사항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대전에서 벌어진 아파트 살인사건에서도 언론은 범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경찰의 발표만 믿고 “아내가 조카와의 불륜관계가 드러나자 공모해 남편을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대전지역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이 사건의 경우 특히, 대전매일은 ‘기자수첩’까지 싣고 ‘조카와 외숙모가 근친상간을 벌였다’는 내용을 전제로 이들의 진술내용까지 소개해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샀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이 사건은 조카의 단독 범행으로 드러나, 아내 김씨는 8일만에 풀려났다.
지난 1월 영국에서 살해된 유학생 살인사건에서도 언론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억울하게 피살된 유학생 진씨에게 명확한 근거없이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덧씌운 것이다. 대부분의 신문은 1월 15일자에 ‘민박집 주인 “여대생에게 마약상 소개”’(문화), ‘런던 민박집 주인“진씨에 환각제 알선”’(한국), ‘숨진 진씨 마약 복용 가능성 조사’(한겨레) 등의 기사를 게재했다. 영국 경찰 소식통의 말을 인용, “김씨의 전자우편 내용으로 볼 때 김씨가 진씨를 약물 밀매인에게 소개하고 진씨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지자 이 밀매인이 진씨의 주검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성 발언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보도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인 민박집 주인이 이메일을 통해 밝힌 “자신은 범인이 아니며 마약을 알선해 준 죄밖에 없다”는 발언만을 근거로 하고 있어 신중하지 못한 보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