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그룹이 지난 96년 전주민방 사업자 선정을 위해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단서를 잡고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지역민방 사업자 선정 로비 의혹이 또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구속된 고대원 전 세풍 부사장이 횡령한 회사자금 39억3000만원 가운데 20억원이 민방설립, 인력채용, 용역비 등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으나 나머지 19억원의 사용처가 불분명해 이 돈의 상당 부분이 로비 자금으로 뿌려졌을 것으로 보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제지업체인 세풍은 지난 96년 2차 지역민방 선정당시 전주에서 하림, 쌍방울 등과 함께 경쟁을 벌였으며 2위인 쌍방울과 근소한 차이로 전주민방 사업자에 선정됐다. 당시 2차 지역민방 가운데 세풍의 경우 2위와의 점수 차가 가장 적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5∼6년 전의 일인데다 계좌추적이 쉽지 않고 당사자들이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풍의 자금담당 전무였던 김모씨까지 잠적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신문사 대검 출입기자는 “검찰은 정치인이 연루돼 있다는 세풍 직원의 진술 및 정황을 포착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몇 명이 어떤 규모의 돈을 어떤 형태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문사 기자는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L씨, 지역 정치인, 옛 공보처 직원 등 정관계 유력인사 3∼5명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역민방사업과 관련, 수억원의 수수설이 제기된 전 청와대 정무수석 L씨는 지난 12일 해명자료를 통해 “지역민방사업 청탁과 관련해 누구와도 만난 일이 없고 돈을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지역민방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같은 의혹들은 검찰 수사를 통해 일부 밝혀지기도 하는 등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지난 97년에는 김현철씨의 측근 박태중씨가 대전(삼정건설)·광주(라인건설) 지역 민방사업자 선정과 관련 6억9000만원을 받은 혐의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졌다. 또 현철씨의 한성대 동기생 김희찬씨가 민방 사업과 관련 거평그룹으로부터 10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삼정건설, 라인건설 등은 그러나 사업자 선정에서는 탈락했다. 또 98년 8월에는 대구민방 사업자로 선정된 청구그룹 장수홍 회장이 홍인길 전 수석 등 정치권을상대로 수억원대의 로비자금을 뿌린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