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칼럼] 씁쓸한 취재

기자칼럼  2002.03.27 13:20:01

기사프린트

최혁재 대전MBC 보도국 차장대우



2월 26일 새벽 6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날 시각에 대전 모 아파트에서 정적을 깨는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엔 사건 당시 긴박했던 광경이 그대로 연상될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으며 출동한 경찰관들이 사건현장에 대한 감식작업과 함께 기자들도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건 발생 이틀후인 28일 용의자를 검거한 경찰은 함께 살고 있던 조카가 외숙모와 정을 통해오던 중 남편인 외삼촌에게 발각될 것을 우려해 조카와 외숙모가 공모해 외삼촌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의 발표를 믿은 신문, 방송 기자들은 경찰의 수사상황을 그대로 보도하기에 이르렀고 대전지역에서는 온통 화제거리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검거된 용의자들이 과연 이같은 엽기적인 행동을 했을까?

의구심을 품은 기자들이 경찰서로 몰렸고 용의자들을 직접 만나 사실을 들은 결과 용의자 2명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다 살해 용의자인 조카가 살인 전과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기자들은 경찰 수사결과에 의문점을 갖기 시작했다.

용의자중 한 명인,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외숙모의 말에 귀를 기울인 기자들은 기사를 재작성해 송고하면서 외숙모의 주장을 담아줬고 경찰 수사결과를 주시하기에 이르렀다.

일주일 뒤 경찰로부터 외숙모는 혐의가 없다는 말이 흘러나왔고 이에 대해 경찰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끈질긴 수사로 살인 혐의로 구속된 외숙모의 누명을 벗겨줬다며 입장을 바꾸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건 현장 취재기자들은 허탈감을 면할 수 없었다.

살인전과가 있었던 조카의 말만 믿고 외숙모를 공모자로 밀어붙이려다 현장검증 등을 통해 조카가 단독범행을 했고 오히려 외숙모까지 살해하려 했다는 전모가 밝혀지자 입장을 바꾼 경찰, 물론 경찰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경찰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기에 마음이 아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참히 짓밟혀진 한 피해자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를 기울여나가야 할 것이다. 기자들은 경찰 수사만을 믿고 기사를 작성하는 현실에서 이번 사건처럼 죄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기자들도 시간을 갖고 좀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들면서 사건 취재기자로서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씁쓸한 마음을 다시 한번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