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와 보광그룹 대상 세무조사를 놓고 언론 개혁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기대와 언론 길들이기라는 의혹이 엇갈리고 있다. 해당사에서는 '언론 재갈용'이라고 반발하면서 전사적인 대응 체제를 갖추는 가운데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언론사에서는 확대 가능성을 타진하며 관망하는 입장이다.
또 언론·시민단체와 언론학계에서는 세무조사 배경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원칙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
비상시국을 맞은 중앙일보는 내부 결속력 강화와 외부와의 연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논조에 불만을 품은 정권 차원에서 회사를 향해 정조준한 것으로 판단하는 중앙일보의 대응이 전면전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일 동아·조선·중앙일보 사장실 기자들의 긴급 모임에서 "여전히 삼성과의 관계를 고려치 않을 수 없다"고 탄식하였듯이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동아일보 고위층은 이현락 주필 땅 문제와 자사 간부 관련 루머 유포 때문에 격앙된 분위기다. 한 간부는 "겉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뒤로 언론을 탄압하는 이중 플레이"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를 향해서는 직격탄을 날리고 동아일보에는 우회공작을 통해 견제한다는 것이다. 다음 세무조사 대상이 동아일보라는 항간의 소문도 출처가 정부 쪽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약한 길들이기용 말퍼뜨리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신문들은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다. 대부분의 신문은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으로 접근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한매일과 한겨레 등은 당연하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한국일보는 보광그룹과 중앙일보와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해설했을 뿐이다.
조선일보는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이 없는 한 나설 이유도 없고 압력도 없을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다. 현 정권과 조선일보는 동지가 될 수 없지만 적대적 관계가 형성될 경우 그나마 여권에서 추진해온 '동진정책'이 물거품 될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상황 인식에 (중앙일보와) 온도 차이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 중앙 일간지 편집국장은 정부의 언론통제 의혹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곳은 중앙일보가 아닌 보광"이라고 새삼 거론하며 "탈루 혐의가 있으면 어떤 이유에서건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사자인세계일보도지면상으로는 정부를 상대로 포화를 열었지만 내부 상황은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유재철 편집국장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의를 파악하는 중이지만 잡히는 게 없다"면서 "6일부터 세무조사가 시작돼야 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기관은 언론 사정 내지 길들이기를 전면 부인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3일 본보의 질문에 "언론사를 상대로 표적 세무사찰을 실시하려면 대통령 출국, 국회 개회 상황에 시기를 맞추겠느냐"고 반문했다. "다시 말해 국세청의 통상 업무에 속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중앙일보의 과민반응'으로 규정했다. 홍두표 전 KBS 사장을 비롯한 언론인 비리 문제가 터지는 상황에서 중앙일보만이 희생양이라는 듯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보광그룹 회장과 중앙일보 사장을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국정홍보처 이규석 차장도 사견임을 전제로 "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세무조사에서 언론사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공교롭게도 시기적으로 오해를 사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번 조치를 보는 언론·시민단체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였다. 언론학자들도 유보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 찬성론을 제시하였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기업 세무조사는 당연한 것이며 이번 세무조사도 일단 '잘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김중배)는 1일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논평을 내고 "일반기업과 동등하게 언론기업 전반에 대한 탈법과 비리를 가려내고 세무조사 결과를 반드시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광주대 류한호 교수도 "중앙일보의 언론 길들이기 주장은 적반하장"이라고 못박았다. "30여 개 업체를 동시에 세무조사 하는데 유독 중앙일보가 반발하는 것은 언론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이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번 조사가 정부의 어떤 설명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조세 논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광운대 주동황 교수는 "정부 말대로 합법적 세무조사라고 해도 여태까지 예외적이었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 이상에서 결단하였음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길들이기인지 언론 개혁의 출발점인지 아직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당사자들을제외한대다수의 시각이다. 중앙일보 쪽의 주장에도 "확증은 없지만"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 개혁을 바라며 원칙적으로 찬성을 표시한 사람들도 길들이기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번 세무조사에 대한 최종 판단은 진행 과정을 지켜보아야 가능할 것으로 본다.
주동황 교수는 "세무조사에 착수하게 된 배경과 진행과정을 공개하고, 그 결과를 밝혀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언론사 관련 추가 조사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야 길들이기 의혹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언론계에서는 제도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힘 겨루기' 국면은 결국 과거 정권이 겪은 잘못된 역사의 반복일 뿐이라는 본다. 한 언론인은 "보광그룹보다 세계일보로 시작된 정기 법인세 조사를 주목해야 한다"며 "전 언론사로 확대하지 않으면 이 또한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세무조사가 길들이기가 될지, 개혁의 밑거름이 될지는 현재 결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앞으로의 진행과정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정권의 언론 관련 실력자들의 성향으로 볼 때 만약 이번에도 이들이 추진한 일이라면 정권이나 개인의 이해관계 차원에서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개혁이냐 길들이기냐의 가름은 정책 결정자들이 정권이나 개인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느냐, 당장의 손해를 무릅쓰고 대의를 택할 것이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