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자질 검증과 정책 중심 보도.’ 선거보도준칙을 제정한 언론사 대부분이 주요한 보도태도로 내걸고 있는 항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언론사 여론조사 보도에 관한한 이같은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가 ‘과잉 보도’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정책 관련 설문은 도외시하고 지지율이나 후보자 간 가상대결에 편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론조사 보도 현황을 살펴보면 3월 한달간 서울지역에만 10여개 신문·방송사들이 20여회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냈다. 민주당 경선이 지난 3월 9일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매일 여론조사를 보도한 셈이다.
설문 내용에 있어서도 지지율 조사에 편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질문지를 공개한 사례 가운데 지난달 13일 문화일보가 TN소프레스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간, 박근혜 의원 신당 창당에 따른 3자대결 등 10여개에 이르는 가상대결 질문이 있었다. 민주당 후보군이 정리되지 않았던 지난달 2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가상대결 질문은 11개였다.
여론조사 관계자들은 선거 관련 여론조사가 대부분 전화조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후보 지지에 관한 질문이 10여개에 이르면 무응답 비율이나 불성실 답변의 여지가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선미 동아일보 여론조사 전문위원은 “가상대결을 과다하게 묻는 전화조사는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최근엔 다소 정리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후보군이 늘어날 경우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달 13~18일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처음 앞선 것으로 보도한 SBS 문화일보 MBC KBS 조사는 ‘표본오차 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여론조사 원칙에서 볼 때 적절하지 않은 보도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지도 위주의 보도가 낳은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SBS 문화일보 조사와 MBC 조사는 표본오차 ±3.1%에서 각각 1.1% 포인트와 2.3% 포인트 차이였고 KBS는 표본오차 ±2.85%에서 3.8% 포인트 차를 나타냈다.
안정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언론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지도 않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도 조사에 열중하기 보다는 실제 국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다양하게 물어보고 이를 통해 의제를개발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