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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 특집-언론운동 주역 전현직 편집국장 3인이 본 2002년 한국언론

권력 떠난 자리…사주와 '길들여진 기자'가 채워

김상철 박주선  2002.04.03 11: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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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8년 언론노조 최초의 파업을 단행했던 조영동 부산일보 논설위원(전 편집국장·사진 오른쪽)과 88년 초대 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이듬해 강제해직 당했던 강기석 경향신문 편집국장(왼쪽 위), 89년 10월 노조위원장으로 26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던 최홍운 대한매일 편집국장(왼쪽 아래). 이들 3명의 기자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언론계에 입문했고 언론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전·현직 편집국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는 7일 제46회 신문의 날을 맞아 이들 전·현직 편집국장 3명에게 당시 언론운동에 참여하면서 어떤 문제의식을 품었고 언론인으로 생활한 지 25년 안팎의 세월이 흐른 오늘, 한국의 신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들어봤다.







‘불신의 언론’ 공통의 기억

강기석, 최홍운 편집국장은 77년, 조영동 논설위원은 78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또하나의 공통점은 이들 3명이 일선기자 시절의 쓰라린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영동 위원은 88년 파업 투쟁의 기억을 더듬다보면 먼저 87년 6월 항쟁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87년 부산에서 민주화 항쟁의 열기가 거세게 일었을 당시 시위 때마다 부산일보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이 항상 돌을 던져 사옥 유리창이 깨지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같은 체험은 ‘관제언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키웠고 결국 편집권 독립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제기했다.

강기석 국장의 기억도 그 시절의 언저리에 있다. 87년 6월 항쟁의 도상에서 시민들은 서울역 앞에 모여 경향신문을 불태웠다.

“사실 5공 시절 대부분의 신문들은 대동소이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보도 양태만이 아니라, 발행면수나 기자들이 받는 봉급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을 때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경향신문을 불태운 사건은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최홍운 국장도 사회부 초년병 시절 빈번하게 독자들의 불신을 체험했다. 80년대 당시 서울신문 로고가 붙은 차를 타고 대학가에 나가면 돌팔매질을 당하고, 총학생회장 인터뷰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나도 마음이 모진 사람은 아니지만, 당시 취재 현장에서 겪은 아픔이 무척 컸다.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한 상황이었고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못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최 국장은 “그래서 그때는 절실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절실한 심정이노조를 만들게 했고 공정보도와 편집권 독립을 향한 절실한 요구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후 이들 3명의 궤적은 기자들의 변화 열망을 대변하는 행보로 이어졌다.



파업…해직… 현장의 궤적

조영동 위원은 88년 부산일보 초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며 그해 7월, 6일간의 파업 투쟁을 이끌었다. 노조는 ‘민주언론 쟁취’ ‘공정보도 우리의 소원’ ‘편집국장 내 손으로’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당시에는 군사정권 치하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제대로 된 보도를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는 조 위원의 말처럼 “외압으로부터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는 기자들의 문제의식과 공정보도 요구가 솟구친 때였고 결국 선거를 통한 ‘편집국장 3인 추천제’를 쟁취했다. 그날의 파업 이후 12년이 흐른 지난 2000년 2월, 추천제를 관철시킨 장본인이었던 조 위원은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강기석 국장은 88년 초대 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럭키금성과 합작 협상에서 불거진 경영진 퇴진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강 국장은 “사실상의 관영매체에서 탈피하고자 새로운 자본과 결합을 추진하는 과정이었으나 노조는 지분 51%를 고수, 편집권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협상이 결렬되자 결국 경영진과 대부분의 사원들이 새로운 자본에 굴복했다”고 설명했다. 강 국장의 말대로 이듬해인 89년 한화와 합작 추진 과정에서 초대 노조 집행부 5명은 강제 해직의 희생양이 됐으며 3년 후인 92년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올 3월 강 국장은 사원주주회사로 탈바꿈한 경향신문의 2대 직선 편집국장으로 취임했다.

88년 초대 노조 부위원장을 맡은 최홍운 국장은 이듬해 10월 노조위원장으로 26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다. 최 국장은 ‘사원지주제 쟁취’ ‘편집국장 임면동의 사후평가’ 요구를 내걸고 삭발과 단식을 불사한 싸움을 전개했다. 최 국장은 “그때 얻은 것은 ‘편집국장이 편집인을 겸한다’는 합의였는데 그 이후에도 편집권 독립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다만 그때 씨앗을 뿌린 게 참다운 신문으로 가기 위한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후 최 국장은 대한매일 민영화 추진 과정이었던 지난 2000년 11월 첫 직선제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며, 올 3월에는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인물이 대한매일 사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독립언론·공정보도 미완의 과제

3명의 전·현직 편집국장들이바라보는 오늘의 신문은 어떠한가. 이들은 “외부 권력의 간섭보다는 이제 언론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2년간의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 현재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인 조영동 위원은 “시대가 달라졌다. 편집국장 재직 시절 정치적 외압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 위원이 지적하는 바는 여전히 공정보도였다.

“과거에도 자사 이기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엔 특히 서울지역 신문에게서 그런 경향들이 두드러진 것 같다. 보도 자체가 자사 이기주의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조 위원은 “사주들이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런 분위기에 기자들이 편승해 가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외압으로 인해 제대로 보도가 안나가든, 자사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든 독자들이 왜곡된 보도를 접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최홍운 국장의 지적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최 국장은 “사주의 영향력이 미치고, 거기에 길들여진 조직원들이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제는 외부 권력의 간섭보다는 언론 스스로의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또 “10여년 전 만해도 언론계엔 나름의 연대의식이 있었다. 출입처에서도 물 먹으면 아프지만 기자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여유가 있었다”면서 “요즘은 자사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너무 심해졌다”고 평가했다.

강기석 국장은 오늘의 ‘신문지형’을 먼저 거론했다.

“유신과 5, 6공 시절에 충분한 물적 토대를 구축했던 일부 족벌언론들과 물적 토대를 구축할 겨를도, 생각도 없었던 ‘관영매체’가 있었다. 그 이후 한겨레 같은 신문이 창간됐다. 지금은 자유경쟁 논리와 취약한 정치권력의 틈새에서 ‘사언론’들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 국장의 평가에 따르면, 지금의 신문들이 아직 ‘온전한’ 독립언론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신문들은 재정 안정이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다. 재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자본과 결합을 고려하면 지난 88년의 경험에서 보듯 결합의 수준을 넘어설 경우 편집권 독립이 흔들리고, 그 수준이 낮으면 여전히 경영 안정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나름대로 물적 토대를 구축한 신문들의 경우 사회 전반의 보수적인 취향에 영합해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신문들은보수적인 대중들의 요구나 이해에 영합해서 지면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이전보다 취약한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언론의 독립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강 국장의 분석은 ‘독립언론 역할론’으로 이어진다. 강 국장은 “이젠 관영매체가 설 자리는 없다. 누구는 독립을 당했다고 얘기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독립하고자 했고 그것을 준비해왔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독립언론이라는 ‘배수진’을 친 상태에서 이를 뒷받침할 물적 토대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라며 “그래야만 족벌신문이 독과점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론시장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3명의 전·현직 국장들은 서로 다른 처지에서 공정보도와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언론 스스로의 문제’를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제46회 신문의 날 표어는 ‘공정한 보도, 책임있는 신문, 신뢰받는 언론’이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