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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없고 인용 부호만…

정치권 폭로 사실 규명보다 중계만 열중

김상철 기자  2002.04.10 1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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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대변인인가. 언론이 정치권의 폭로와 공방을 인용 보도하는데 몰두해 사실보도라는 언론의 기본 책무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확인이 부족한 사안도 정치인이 발언하면 기사화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선후보들의 폭로성 발언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진 뒤 이에 근거해 보도하지 않고 일단 발언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는 보도를 함으로써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의 언론 발언의 경우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지난 5일자 1면 머리로 이인제 후보측 발언을 인용, ‘집권하면 메이저신문을 국유화하겠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모임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메이저나 국유화 발언을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 8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 만들어진 것인가’ 성명에서 “이들 세 신문 1면에서 ‘국유화’라는 단어가 사라진 데 대해 주목한다”며 “진위를 밝히고 독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책임 있는 신문이 취해야 할 태도”라고 밝혔다. 또 동아 폐간과 관련 “‘했을 수도 있다’는 기자 발언을 가지고 ‘폐간 발언을 했다’고 기정사실화 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8일 이인제 후보측이 제기한 ‘연청(새시대 새정치 연합청년회) 경선 개입’ 주장 역시 “김윤수 공보특보는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는 식으로 기존 보도양태를 되풀이했다. 인터넷에 익명으로 올려진 글을 근거로 제기한 협박설을 그대로 중계하는 보도도 나왔다. 대한매일 동아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등은 지난 3일 이 후보측이 의원들을 상대로 한 노사모 회원들의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며 “‘햇살’이라는 아이디 사용자는 ‘이인제 습격대를 결성해 조국의 앞날에 큰 획을 그어 보심이 어떨지.^^’라고 썼다”는 등 김 특보가 공개한 자료를 인용 보도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학부 교수는 “언론이 인터넷의 비방글을 비판하지만 단순 중계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선 별 차이가 없다”면서 “이는 언론에 부여된 공신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언론 보도가 ‘사실에 대한 존중’이라는 기본 요건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치인들이 말만 하고 책임은 안지는 정치문화도 문제지만, 그런 문제를 제대로 추궁하지 않은 것은 언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이같은 태도와 관련 지난 97년 대선당시 ‘청와대 국민신당 창당 지원’ ‘국민신당 창당지원 의혹 제기’ 등의 중앙일보 보도를 비롯, 대부분의 언론은 국민회의 신한국당의 의혹 공세를 중계 보도했었다. 언론은 또 지난해 10월 ‘백궁·정자지구 도시설계 변경 의혹’과 관련 2년전 시민단체에서 문제 제기했을 때는 침묵했다가 한나라당 의원이 이를 폭로하자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보도를 보면 언론이 후보자가 된 것 같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폭로 중계보도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며 “국민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후보자 간 정책대결과 논쟁이지 언론을 통해 중계되는 ‘대리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