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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제주 잣성' 취재후기

임성준 제주일보  2002.04.10 14: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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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준 제주일보 교육체육부 기자





입사 7년만에 처음으로 장기 기획물이 주어졌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출입처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면서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일상적인 취재 관행을 벗어나 전문 기자 정신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면밀한 취재와 수준 높은 기사 작성, 정확한 기사의 초점’으로 요약되는 특집 기획 기사의 핵심 요소를 늘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제주의 독특한 목축문화유산인 ‘잣성(조선시대 국가가 운영한 옛 목마장(牧馬場)에 주민들이 한라산 중턱에 이중 삼중으로 쌓았던 경계용 석축)’을 주제로 선정했기 때문에 교육부 기자가 외도를 한 셈이다.

그 동안 학계나 행정당국의 체계적인 연구나 조사가 없었던 터라 20회 분량의 장기 연재 기획 특집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한라산 중턱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는 잣성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형도와 고도계만 달랑 들고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1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고 한 사람을 만나는 데 수일이 걸리기도 했다. 소주 됫병과 담배 한 보루를 사들고 마을 경로당을 찾아가 조르기도 했다.

이번 기획 취재의 가장 훌륭한 취재원은 전문가나 공무원보다는 실제 목축업에 종사했던 고령의 현지 주민이었다. 초년 기자 시절 지역주재기자의 경험이 취재원을 발굴하는 데 무엇보다 커다란 도움이 됐다. 제주도 전역의 중산간 마을과 한라산 중턱의 오름, 가시덤불 속을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다.

전문가와 전화 취재도 해야 하고 대학도서관에서 고지도와 옛 서적과 문헌을 찾아내야 할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사람 이야기’가 절대 필요했다. 모든 기사가 다 발로 쓴다고 하지만 이번 ‘제주의 잣성’이 지역기획보도 부문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것은 발품을 팔아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현장에 가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터득했다.

단독으로 발굴해서 쓴 것이 아니라 취재원, 독자들과 함께 쓰는 기사라는 평을 받고 싶었다. 기획물 첫 회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어 놓았을 때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기도 했다. 기다란 문단이 독자를 지루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긴 기사를 쓰면서 글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지지 않을 까 늘 고민했다. 아니나 다를까 데스크와 편집기자, 선후배들로부터 버릴 것은 버리고 과감해지라는충고를 자주 받았다. 일단 취재에 들어가서야 기사 방향을 설정하는 실수를 범해 불필요한 노력을 소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게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 한 자, 한 자가 광고란을 제외한 10단 전면에 활자화됐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기획물은 의도하는 목적과 기사의 분량을 정확히 알고 취재 범위와 한계를 설정,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사족(蛇足)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이번 기획 취재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장기 특집 기획을 준비하는 초년 기자들은 “당신의 생각을 명함 한 장의 뒷면에 다 적지 못한다면 당신은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는 한 선배 기자의 말을 명언처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