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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상 유시민의 동아일보 퇴사·절독기

손문상 유시민  2002.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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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아일보의 각성을 촉구하는 두 편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사평론가 유시민 씨가 30년 동안 애독해온 동아일보를 끊으면서 <인물과 사상> 22호에 게재한 ‘동아일보 절독기’와 지난 9일 돌연 사표를 제출한 동아일보 손문상 화백이 사내 게시판을 통해 밝힌 ‘퇴사의 변’이 그것. 누구보다 동아일보에 애정을 가졌던 이 두 사람은 각각의 글을 통해 암울했던 과거에 1등 신문이었던 동아일보의 ‘추락’을 안타까워하며 자신들이 동아일보를 끊거나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두 사람의 글을 요약 게재한다.





손문상 화백 ‘동아일보를 떠나며’| 어디서 동아일보 같은 놈이



우선 저를 아껴주고, 아니 언제나 그 이상의 사랑과 감동을 보여주셨던 동아일보의 선후배 동료들께 떠남의 변을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음을 머리 숙여 용서 빕니다.

제가 동아일보에서 있었던 시간만을 따진다면 만 2년 4개월을 못 다 채웠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동아는 열정과 희망으로 바라보며 동경하던 내 청년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신문이자 그 ‘6월의 우리모두’를 아우러냈던 ‘거리의 신문’ ‘광장의 신문’ 이었습니다. 그후 십수년이 지난 어느 날 동아희평을 그리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 전도 아닌 불과 6, 7년 전 동아는 진정 최고의 신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최고의 신문이란 발행 부수도 아니고 광고단가도 아닌, ‘영향력’ ‘공정성’ ‘정확성’ 모두가 공히 종합평가 일등의 신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신문의 외형을 넘어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내외를 포함한 전체 한국의 기자사회를 향도하는 도덕적, 심리적 우위를 우리 동아의 기자들이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그런 동아일보를 떠났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최근 일련의 보도에 대해 시시콜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우리가 싸움의 주체가 돼 버린 최근의 기사는 지난 세무조사 때보다도 내용면에서는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매우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위험한 보도태도가 짙게 함의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관점에서 문제는, 회사보다도 다시 ‘나’였고 ‘우리’였습니다. 이미 상황논리의 함정에 깊숙히 빠져있어 이제는 스스로조차도 얼마나 비겁해지고있는지조차모르는 나와 우리들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혹자는 말할 겁니다. 이런 류의 ‘신파조’는 이미 오래전에 동아가 용도 폐기한 가치들이고 이제 그만 징징대고 정신차리라고 말할 겁니다. 이제는 기능적으로 뛰어나고 사고의 경쾌함을 갖춘 유능한 정보세일즈맨이 새 시대에 필요한 기자상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회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적으로 그 논리에 동의한다 처도 왜 동아는 그 사이 3등으로 전락한 것이며 그 책임은 어느 누가 졌냐는 것입니다.

얼마전 한 선배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야! 손문상, 너 여기 왜왔어!” “네?…” “어디서 ‘동아일보’ 같은 놈이 와 가지고…정체를 모르겠어?” 저는 아직도 그 말의 속뜻을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02. 4. 10 용인땅 운학골에서

손문상 올림







유시민의 동아일보 절독기| 지금 동아가 자랑스러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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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구독하던 동아일보를 끊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30년 동안 매일 읽던 신문을 끊은 것이다. 나에게 동아일보는 ‘신문 그 이상의 신문’이었다. 1984년 가을 집시법도 국보법 위반자도 아닌 폭력범이 되어 감옥에 갔을 때, 누구도 귀를 열지 않는 상황에서 동아일보만은 내 말을 들어주고 지면에 옮겨주었다. 문화공보부에서 날마다 ‘보도지침’을 내려보내 신문편집을 일일이 통제하던 전두환 정권 시절, 감시와 검열의 눈을 피해 그 작은 기사(항소이유서)를 내보냈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나는 잘 안다. 특히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87년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 당시 동아일보는 진실을 파헤치고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데 다른 어떤 언론매체보다 큰 역할을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내가 집에서 구독하던 동아일보를 끊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공개적으로 동아일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병증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과거의 잘못을 털어내지 못하는 탓으로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로 인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제와 군사독재 시대 동아일보가 한 친일보도와 관제보도를 ‘강요된 곡필’로 본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용서받지 못할 죄악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을 인정하고 진솔하게사과하고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된다.

문제는 최근의 정치사회적 현안을 대하는 동아일보의 보도 태도다. 내가 동아일보 구독을 중단하기로 한 직접적인 계기는 9·11 테러 이후 동아일보가 보여준 대북정책 관련 보도들 때문이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북미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고려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 동아일보가 사설과 해설기사, 노재봉 씨 등 외부필진 칼럼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햇볕정책에 대한 비아냥, 김대중 정부 외교정책이 곤경에 빠진 것을 즐거워하는 듯한 무책임한 논평이 거의 전부였다. 이런 것이 싫어서 조선일보를 보지 않고 사는데, 나의 오랜 벗 동아일보마저 이럴 줄이야!

동아일보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또는 지면을 통해서 아는 훌륭한 기자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은 자기 손으로 만든 동아일보 가판을 펴드는 순간 흐뭇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동아일보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동아일보는 지금 동아일보를 구독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던 전통 독자층을 배신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그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일상적 생활공간에서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