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남 김해지역 야산에서 발생한 중국 국제항공 소속 여객기 추락 사고는 재난보도준칙 제정 필요성과 함께 그 실효성의 문제를 동시에 제기했다. 취재경쟁에 번번이 구멍이 뚫리고 마는 재난보도준칙의 한계가 재론된 것은, 그만큼 공신력 있는 가이드라인의 제정 필요성이 절실함을 재확인시켜줬다는 지적이다.
KBS MBC SBS 등 방송사는 재난보도준칙이 있으나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이를 마련해놓고 있지 않다.
KBS와 SBS는 재난·재해보도지침, MBC는 재해방송 보도준칙을 통해 관련 사안을 규정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재해, 재난의 보도기관인 동시에 방재기관이라는 인식 하에 취재와 프로그램 제작에 임한다 △피재해자가 원치 않는 무분별한 촬영을 금한다 △관리기관이 설정해 놓은 폴리스라인, 포토라인을 준수한다 △무분별한 취재경쟁을 자제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준칙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현장취재 경험을 근거로 취재한다”거나 “취재경쟁이나 보도관행상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한다.
한 방송사 기자는 “유족들한테 카메라 들이댄다고 비판하는 시청자 글들을 봤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속보경쟁과, 그런 꼭지가 불가피하게 들어가야 하는 관행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준칙과 관련해서는 “상당부분 선언적 의미일 뿐 내용도 잘 모르고 현실적으로 적용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방송사 사회부 기자는 “이번 사고의 경우 포토라인 같은 것은 현장에서 거의 불가능했다”면서 피해현황이나 명단은 구조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른다는 준칙 규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식 발표가 너무 늦었다. 언론 입장에선 마냥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처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기자들은 또 고질적인 보도경쟁과 취재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대책본부의 역할을 거론하기도 했다. 한 신문사 주재 기자는 “사고 기장의 경우도 병원에서 환자임을 들어 접근을 통제했음에도 무리하게 취재경쟁을 벌인 것은 윤리적으로도 문제 아닌가”라며 “유족을 찾아온 정치인들을 취재하느라 정작 유족들이 할 말을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는 취재진이 몰려와 유족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아울러대책본부에서 신속한 정례 브리핑이나 공동 인터뷰 주선 등을 통해 취재 혼선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전 언론사 차원의 합의를 통해 재난지역 취재 제한선을 만들고 준칙을 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재난보도의 문제점이 평상시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풀이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 ‘위험사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취재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상시적인 교육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