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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왜 자꾸 야위어 가는지…"

동아일보 어느 기자의 고백

동아기자  2002.04.24 11: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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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노조 공정보도위원회는 지난 18일 타블로이드 4면 짜리 보고서 ‘공보위광장’을 발행하고 최근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동아일보 지면의 균형감 상실을 비판했다. 보고서 내용 중 ‘李주장 기정사실화 盧에 연일 핏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지면분석’을 요약 게재하고, 최근 보도와 관련 ‘내 청춘 바친 동아일보 왜 자꾸 여위어 가는지…’라는 제목으로 심경을 고백한 한 편집국 기자의 글을 전제한다.









오늘도 난 내 영혼을 팔았습니다. 내 판 영혼만큼 그 속에 독주를 부어 채웠습니다. 처음 동아일보에 들어와서는 내 몸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내 몸을 팔아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었기에 난 내 몸을 기꺼이 내 놓았습니다. 그건 즐거움이었고 누구도 쉽게 경험치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몸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 사회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데 우리들의 몸과 피와 땀은 자양분이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난 내 영혼을 팔고 있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동아일보는 갔습니다. 그 속에는 자유와 정의, 고단한 자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분노와 독선, 광기, 기득권의 유희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회사 상층부는 우리에게 의미 모를 염불을 외는 중이 되라 했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면서….

나는 동아일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맡기면서 차라리 포디즘의 풍요라도 꿈꾸었는지 모릅니다. 이상한 것은 내 영혼을 팔면 팔수록 동아일보가 더욱 야위어갔다는 것입니다. 80년대까지 아무도 넘보지 못하던 ‘동아일보 정신과 철학’은 시대의 변화라는 미명하에 ‘싸구려 상술’과 ‘기능주의’로 대체되었습니다. 선배들이 피와 땀으로 지키고자 했던 기자의 자유와 가치는 휴지통에 내팽겨쳐졌고 우리는 마감시간이라는 목줄에 끌려 자판기처럼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에 대한 찬사와 갈채는 이제 30년 독자들의 질타로 바뀌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승차를 강요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자선배들이었습니다. 동아일보에 배인 광기를 팔며 나는 오늘도 허기진 배를 채울 것입니다. 그나마 포디즘의 풍요 대신 임금동결이라는 대가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만…. 난 지금 10여 년에 걸쳐 ‘동아일보를 죽여야한다’는 음모가 있었다는데 결단코 동의합니다.

내게 있어 팔아야할 영혼은 이제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내영혼을 팔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내 영혼을 다 팔고 나면 난 아마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새 비쩍 말라버린 내 사랑하는 동아일보를 붙잡고 통곡한 뒤 절을 등질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내 청춘이었고 내 삶이었습니다.

<편집국 한 조합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