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전 4형제’의 손을 거쳐간 신문을 차곡차곡 쌓아본다면? 3형제가 1인당 평균 30년 이상, 둘째가 5∼6년 가량 윤전부에서 신문을 찍었으니 합하면 대략 100여년치, 쉽게 가늠하기 힘든 양이다.
지난해 조선일보 성남공장에서 정년 퇴임한 김기선 씨(66), 매일경제 윤전부 출신의 김차선 씨(63), 한국경제 윤전팀장 김영선 씨(54), 대한매일 윤전팀 부국장 김인선 씨(52) 형제 얘기다. 6형제 중 4명이 전현직 윤전부 직원이니 ‘윤전 형제’라 불릴 만도 하다.
장남 기선 씨는 일요신문, 한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성남공장에서 꼬박 37년을 일했다. 다섯째 영선 씨는 군대 제대 후 70년 산업경제일보를 시작으로 73년 내외경제를 거쳐 80년부터 한국경제에서 33년째 윤전업무를 하고 있다. 막내 인선 씨도 78년부터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에서 윤전기를 돌리고 있다. 이들 3형제에 비해 경력은 짧지만 둘째 차선 씨도 매일경제 윤전부 출신이다.
김인선 대한매일 윤전팀장은 “아버님이 윤전기 제작 회사인 일본 동경기계(TKS)에 근무했었고, 삼촌이 기술을 전수받아 62년부터 80년경까지 조선일보 사옥 뒤쪽에 협신공업이라는 철공소를 세우고 신문사 윤전기 설치, 수리, 정비 등을 도맡아 했었다”며 김씨 집안과 ‘윤전기’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특히 윤전기를 설치해주면 각사 공무국장이 감사패를 주던 당시에 삼촌 김수갑 씨는 이 바닥에서 꽤 이름을 날린 기술자였다고 한다.
육중한 기계음이 울리는 신문사 지하에서 1톤이 넘는 종이를 끼워가면서 이들 형제가 기름밥을 먹기 시작한 데는 이런 집안 내력도 있었지만 가난도 또다른 이유였다. 김영선 한국경제 윤전팀장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형제들이 직장을 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윤전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일이지만 30여 년간 큰 사고없이 일을 했던 것이 형제들에겐 가장 다행스런 일이다. 78년, 요즘처럼 기계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 수작업으로 신문 앞뒷장을 자르다 막내 인선 씨의 오른손 검지손가락 위가 잘려나가 형제들을 놀라게 했던 일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형제들이 같은 일을 해서 좋은 점이요? 요즘에도 집안 대소사 때 만나면 기계에 대해 정보도 교환하고 그래요. 힘들었던 점이라면 좁은 바닥에서 ‘누구 동생, 누구 조카’라는 얘기는 파다하고, 형님들에게 누끼치지않도록 정말 녹초가 될 때까지 일했어요.”
막내 김인선 팀장은 58명의 팀원을 이끄는 요즘에도 ‘서윤회’라는 윤전부장 모임에 형님과 나란히 참석할 때면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진다며 웃는다.
이들 4형제의 ‘역사’는 이제 셋째 학선 씨의 아들 진만 씨가 조선일보 성남공장에서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