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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제왕적 언론

이인범 기자  2002.04.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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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범 대전방송 보도국 기자





연초에 한 언론사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화두로 던져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 테제의 핵심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바탕으로 제왕적 위치에서 군림했던 대통령도 21세기를 맞은 이 시점에서는 기업을 이끌어 가는 전문경영인 처럼 CEO 대통령으로 확 바꾸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선거판이 한창 달아오르기 시작한 요즘, 대통령 출마자들은 서로 “내가 CEO 대통령의 적임자”라며 표심을 사기에 바쁜 모습들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는 대통령의 세 아들 ‘홍(弘)트리오’ 비리 파헤치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큰아들은 이용호, 진승현 게이트, 둘째는 아태재단 비자금, 막내는 최규선 게이트 등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각종 비리 의혹들이 차례로 꺼풀을 벗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의 아들 문제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운 이 사태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기세등등했던 제왕적 대통령 YS는 권력을 농단한 아들을 향해 쏟아지는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철창 속에 아들을 가둬야했다. 정권말기 이 참담한 사태를 겪은 YS는 제왕의 지위를 상실한 채 말년을 허송세월 하다 끝내는 IMF 직격탄까지 맞고 권좌를 물러났다.

국민의 정부를 기치로 제왕에 오른 DJ도 임기말년 아들 3형제를 향해 퍼붓는 여론의 십자포 앞에 완전히 넋이 나가있다. 화살 끝은 이제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침묵하는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고, 그 결과는 YS가 황태자인 아들을 철창에 가뒀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졸지에 무기력한 대통령으로 전락한 두 지도자는 언론을 등에 엎고 정권을 창출하다가 언론의 뭇매 앞에 고개를 떨궜다. 정권 초기 화려한 수식어로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준 게 언론이고, 말기에는 온갖 험한 꼴을 당하고 쫓아내듯 권좌에서 내몬 게 바로 언론이다. 선거철이 되면 언론의 정치개입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그 중심에 일부 언론사들이 서 있었다는 의심을 사온 것도 공지의 사실이다. 낮의 정치는 청와대가 하고, 밤의 정치는 특정 언론사주가 쥐락펴락 한다는 말도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선거 때마다 교묘한 방법으로 대통령 만들기에 개입해온 어느 언론사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비아냥섞인 찬사도 쏟아진다.

언론이 개입해 뽑은 제왕적 대통령이 한결같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이제는 21세기 정치 발전을 위해 언론이 더 이상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서는 안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