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경선이 흥행에 성공하고 각 당 대선 주자가 결정되면서 후보들의 자질을 엿볼 수 있는 TV 토론 역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기존의 사회자 중심 토론방식에서 탈피해 후보들간 상호 토론, 일대일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토론 미비, 날카롭지 못한 진행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TV 토론을 진행하는 제작진들의 고충은 무엇일까. 방송 3사 TV 토론 사회자들을 만났다.
“올해 처음 후보자 상호토론을 시도했는데, 방송 전날 제작진이 잠을 못자더라. 토론이 될까, 같은 당인데 신랄하게 공격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붙여 놓으면 싸움이 된다’는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사회자 중심으로 진행돼 온 TV 토론에 상호토론이라는 참신한 변화가 생겼다. KBS 길종섭 대기자도 평소보다 예비 질문을 많이 준비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나타났다. 후보들이 상호토론을 하면서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이를 적절히 제어할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길 대기자는 “후보들이 거짓말을 해도 추궁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오히려 시청자 판단을 흐릴 소지가 있다”며 “앞으로는 후보 상호토론 뒤에 전문가 패널 토론을 연결시켜 후보들의 거짓말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후보들의 거짓말 뿐만 아니라 동문서답도 난감한 부분이다. 후보들이 핵심을 비켜가는 딴 소리를 하거나 누가 봐도 아는 뻔한 사실을 궤변으로 우길 땐 정말 황당하다는 것. SBS 엄광석 대기자는 “후보들이 동문서답을 못하도록 사회자가 중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한계는 있다”며 “국민들의 관심사를 효과적으로 끌어내지 못했을 땐 시청자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TV 토론의 형평성 문제와 편파시비도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똑같은 시간을 분배하는 기계적 균형이 진정한 형평성인지는 늘 고민하는 주제다. MBC 손석희 아나운서는 “어떤 후보는 시간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반면 그 주제에 대해 할 얘기가 없는 후보는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지 못한다. 결국 토론의 농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길 대기자는“후보들이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나열해도 사회자는 그냥 탁탁 건드리는 수준에서 끝내야 할 때가 많다”며 “언론 보도 내용보다 이야기를 더 진전시키면 ‘왜 편파적인 질문을 하냐’는 항의가 빗발친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정책 질문과 개인경력·사상·가정사 관련 질문의 비율을 적절하게 맞추는 부분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애초 기획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토론이 흘러가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엄 대기자는 “시간을 고지해도 후보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면 강조하고 불리하면 궤변으로 때운다. 노련한 정치인일수록 협조를 잘 안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 길 대기자는 “후보 개인의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을 할 경우 개인 사활이나 당의 운명이 걸린 문제라 고민이 크다”며 “토론 전에 후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후보들도 ‘다 이해한다’면서 분위기를 푼다”고 말한다.
후보자쪽에서 토론 전에 질문을 알려달라는 요구도 해온다. 길 대기자는 “후보자 캠프쪽에 언론계 인사들이 많으니 이런저런 인맥을 동원해 슬슬 연락이 온다. 토론의 큰 주제는 알려주지만 세부적인 질문은 절대 보안”이라고 말한다. 엄 대기자도 “생방송은 돌발성이 주는 재미가 있고, 또 그것이 검증의 효과를 발휘한다”며 “미리 알려주면 각본 아니냐”고 말한다.
이제 곧 각 당 대선 후보들이 모두 결정되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한 토론이 펼쳐질 것이다. 방송 3사 사회자들도 “TV 토론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분위기다.
손 아나운서는 “TV 토론이 점차 자유토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사회자가 주제를 던져주고 후보들이 일대일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충분히 검증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엄 대기자는 “사회자가 모든 걸 다 하려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후보자간 직접 토론 등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안을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토론 방식이 개발돼야 한다”며 “일반 국민들을 패널로 참여시키는 토론 방법도 고민했으나 대표성 문제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길 대기자는 “TV 토론을 통한 후보자 검증은 아직 수박 겉핥기 단계”라며 “내부 인사와 외부 전문가가 결합하는 전문자료팀을 두고 후보의 과거 발언과 행적 등 관련 자료를 자체적으로 풍부하게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