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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며] 기자와 문건

김상철 기자  2002.05.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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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집에서 발견된 이른바 ‘언론개혁 문건’ 작성자가 광주지역 신문사 기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언론은 ‘아태재단 언론문건 지방지 기자가 작성’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개혁의 완성도를 높이고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앙 신문에 대한 개혁이 시급하다’는 제목이 붙은 이 문건에는 ‘종합 일간지〓반개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일자 사설에서 “최종 시나리오가 채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음지의 정략가들과 모사들이 참여해서 결국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라는 작품의 밑그림을 만들어냈을까를 생각하면 온 몸이 오싹해진다”고 언급했다.

검찰측 표현대로, “지금까지 발견된 언론개혁 관련 문건 가운데 가장 조악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가장 저급한 언론관을 드러낸 문건”이 권력의 주변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문건 작성자가 기자’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으면서 문건 내용과 그 배경에만 주목하고, 정작 작성자가 기자라는 사실을 도외시했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기자가 작성한 문건이 공개된 것은 이 정권 들어 지난 99년 10월 당시 문일현 중앙일보 차장의 ‘성공적 개혁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 방안’에 이어 두 번째다. 문건 작성자를 단순히 ‘저질 기자’ ‘언론계 공적(公敵)’으로 털어 내버린다고 언론의 부끄러움이 감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언론개혁 문건’ 사건 역시 정언유착이라는 폐단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오싹한 문건’을 기자가 작성했다. 왜 문건만 보고 기자는 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