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최근호(5월 16일자)의 커버스토리를 놓고 전·현직 시사저널 기자들 사이에 공방이 뜨겁다.
지난 98년 초 작성된 구 안기부 문건 내용을 다룬 ‘영남 인맥을 찍어내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 시사저널에 몸담았던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가 ‘시사저널의 희안한 특종/ 4년전 표지기사 재탕에 지역감정 부채질’이란 제목의 기사로 문제를 제기하자 시사저널측도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시사저널 보도와 파장=시사저널은 ‘영남…’ 기사에서 “1998년 초 작성된 국정원 내부 문건 세 가지를 최근 입수했다”며 ‘안전기획부 문제점 및 개선방향’, ‘문제 인물 명단’이란 제목의 문건을 4쪽 분량으로 전문 보도했다.
문건의 내용은 ‘97. 12 대선시의 6적 ○○○ 1차장, ○○○ 1특보, ○○○ 감찰실장’ 하는 식으로 실명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치인과의 관계나 문제 행적 또는 비리 사실 등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기사에서 “그 동안 여러차례 현정권 출범 초기에 과거 정권과 가까웠던 국정원 인사들을 숙청하기 위한 살생부가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은 있으나 그 내용이 이처럼 구체적으로 적시된 문건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보도가 나가자 한나라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국정원 8대 요직 전현직 역임자 27명중에 영남출신이 한 명도 없던 것도 이 정권이 영남출신 고위직을 모조리 숙청했으니 가능했던 것”이라며 “당시 국정원장인 이종찬씨 등은 해명해야 하며, 숙청을 주도한 자들을 가려내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소위 ‘안기부 살생부’라는 문건은 98년 당시 동아일보가 3월 5일자로 보도한 것이고 시사저널에서도 스스로 출처불명의 ‘괴문서’라며 이미 그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며 “마치 새로운 사실인 양 망각을 틈타 재탕하여 보도하며 ‘영남인맥 제거’ 운운한 것은 결과적으로 지역감정 부추기기로 비칠 따름”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98년 3월 당시 ‘안기부 살생부’와 관련해선 동아, 조선 등이 그 존재 사실과 일부 내용을 보도했다.
김당 기자 문제제기=오마이뉴스의 김당 기자는 시사저널이 공개한 ‘안기부 문제점과개편방안’ 문건을 포함한 3종의 입수 문건은 98년 당시 자신이 입수해 시사저널 3월 19일자에 보도한 4종의 일부인 ‘출처 불명의 괴문서’라며 “시사저널의 국정원 숙정문건 전문공개 기사는 ‘시간의 쓰레기’일 뿐”라고 공박했다.
김 기자는 또 당시 자신이 입수한 4종의 ‘괴문서’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괴문서를 원문 그대로 인용 보도하는 것은 문건에 거론된 당사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데다가 정보기관의 생명인 조직 보안을 해치면서까지 이런 문건을 만든 자들의 ‘불순한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기자는 이어 시사저널의 문건 공개가 ‘시간의 쓰레기’인 이유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명예훼손의 소지가 크다는 것. 둘째, 거론된 간부들의 지휘통솔을 어렵게 하고 상대국 정보기관에 ‘해외파견’ 요원들의 신분과 인신공격성 비난을 노출함으로써 정보력을 약화시키고 국익의 손실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 셋째는 “‘영남인맥을 찍어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결과적으로 괴문서를 가지고 지역정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반박 = 시사저널은 13일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반론에서 “우리는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그 존재 사실과 내용이 부분적으로 보도되었던 문건을 ‘전문공개’했을 따름”이라며 김 기자의 비판을 반박했다.
시사저널은 “98년 당시 김당 기자가 이 문건에 대해 보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기사는 이런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렸을 뿐, 이 문건의 내용이나 가치는 무시했다”며 “시사저널이 당시의 기사를 재탕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시사저널은 당시 그 의미가 폄하되었던 문건을 ‘복권’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기자의 ‘시간의 쓰레기’ 비판에 대해서는 “4년 전에는 신뢰하기 힘든 괴문서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국정원이 왜 초기의 개혁 의지를 상실하고 권력 실세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문건은 없다고 판단해 전문을 싣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지역정서 부추기기’에 대해 “지금의 시사저널 편집진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려고 기사를 쓴 적도, 그런 기사를 내보낸 적도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김당 기자가 잘 알 것”이라며 “공개한 문건은, 과거 국정원 간부들의 추태가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영남이건 호남이건 어느 쪽에도 별로 유리할 게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당 기자 “재반론 할 것”=이런 시사저널 반론에 대해 김당 기자는 “시사저널이 문건을 다시 보도하려 했다면, 새로 입수해보니 98년 3월 보도할 당시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등의 편집자 주를 달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측이 문건이 사실이라고 확인했거나 작성자가 누군지 확인된 게 없는 상태에서 전문 공개를 ‘복권’시켰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며 “재반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문정우 취재 총괄부장은 “쟁점은 재탕 문제가 아니라 문건이 보도할 가치가 있느냐 여부”라며 “문건은 안기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상당한 위치에 있는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든 것으로,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