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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경품경쟁과 신문의 미래

우리의주장  2002.05.22 14: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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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에어컨선풍기·발신자 표시 전화기·장식용 수족관·마마밥솥·자전거….

신문 지국들이 한 달 구독료가 1만2000원인 신문을 보라고 건네는 경품들이다. 비용으로 따져 3만원~5만원 안팎 하는 것들이다.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에선 최고 6만9000원짜리 자전거(시중 판매가 16만원)까지 선보였다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점에서 신문 경품은 더 이상 ‘곁들여 주는 물품’이 아니다.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조중동’ 대 ‘한경대’로 신문시장이 재편됐다는 인식이 있지만 경품이 좌우하는 판매 시장에선 무의미한 구분이다. 한 마디로 메이저도 마이너도, 보수도 혁신도 없다. 지면의 넓이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마이너사 지국들이 오히려 고가의 경품으로 출혈적인 물량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판이다. 지난 4월 자전거가 등장한 이후로는 아예 아파트 입구에 좌판을 벌여 놓고 ‘호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판매시장의 혼탁상만 보면 신문업계는 자정 능력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달 신문의 날 기념대회에서 최학래 신문협회 회장은 “스스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 어떻게 사회적 비판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고 신문 종사자들에게 물었다.

신문의 신뢰에 대한 타격은 차치하고라도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 경영상의 타격이 심각하다. 지난해 흑자를 낸 곳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최대 8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신문사들이 광고주를 현혹하기 위해 벌이는 경품 파티로 신문 경영이 더 부실해지고 있다.

한 신문사 사주는 최근 “연간 300억~400억원이 출혈 경쟁으로 낭비되고 있다”며 “이 돈을 절약하면 신문 종사자들의 대우가 훨씬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무가지와 경품 제공에 소모되는 경영 자원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 신문사 경영이 한결 튼실해질 것이라는 인식이다. 브레이크 없는 출혈 경쟁은 경영의 부실화를 가속화하고 지면의 파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품의 비용 효과도 문제다. 경품으로 과연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이자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SK 회장은 “접속의 시대에 신문 구독은 신문지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신문사와 접속해 일종의 정보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면에 만족하지 못하면 곧바로 다른 신문으로 옮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품값을 뽑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예 신문이라는 미디어 자체를 외면할 수도 있다. 광고주인 기업들이 이런 변화에 둔감할 리 없다. 광고 집행 때 ABC에 가입한 신문과 가입하지 않은 신문을 차별하겠다는 광고주협회의 방침은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반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판매시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신문은 외부자본의 경제적인 통제는 물론 정치권력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문은 공정하고 책임 있는 신문의 전제다. 기자사회가 신문 판매시장의 혼탁, 무분별한 경품 제공에 무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