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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선거 보도 대선 향배 예측척도 전락

'싹쓸이·총력전'등 중앙당 중심 보도 여전

김동원 기자  2002.05.22 14: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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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유권자 중심 의제설정 고민해야





6·13지방선거와 관련한 언론보도의 문제점은 이번 지방선거를 연말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바라보는 정치권의 견해를 그대로 뒤따르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지방선거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면 언론이 그에 합당한 지면 할애와 기획·연재 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실상은 출마 예상자 경력 및 주장 소개, 판세 분석 등에 그치고 있다.

언론재단이 내는 <신문과방송> 5월호에서 전북대 신방과 권혁남 교수가 동아 조선 중앙 한겨레 4개 일간지를 상대로 조사한 데 따르면, 올해와 지난 98년의 3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기간을 비교할 때 ‘지방선거’ 관련 기사는 98년 179건에서 올해 77건으로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방선거에 대한 지면 및 기사건수 등 양적 측면의 관심이 줄어드는 경향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질적 측면 역시 ‘대선 전초전’이란 정치적 의미가 중앙 정치권의 이해관계에만 국한돼 있어 지방선거 자체의 쟁점과 현안에 대한 밀도있는 접근은 드문 형국이다. 지방선거의 득표전략 등이 일관되게 연말 대선의 향배를 예측하는 척도로 다뤄지고 있으며 대선과 결부된 각 당의 이해관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지방선거 보도의 주요 내용으로 여과 없이 기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기사 양 줄고 중앙당 편중

지역주의적 접근도 여전하다. 선거 목표 분석은 ‘한나라당…영남권 전승·충청권 교두보 목표’, ‘민주당…호남 싹쓸이·부산시장 총력전’, ‘자민련…충청권 승리 목표속 협력 도모’ 등의 보도양태를 보이고 있다. ‘관전 포인트’ 등의 기사에선 “어느 지역에선 어느 당의 석권이 예상된다”거나 “부산 선거는 노무현-이회창 후보의 대리전”하는 식의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지방선거의 쟁점과 관련한 보도 역시 실제 지역 현안에 대한 밀착취재를 통해 언론 스스로 이슈화하기보다는 ‘수도권, 한나라당 “비리부각” 민주당 “40대 공략”’, ‘부산시장 선거, 한나라당 “DJ후계자” 민주당 “정면돌파”’등 각당의 중앙 차원에서 내세우는 대선과 연관지은 선거 쟁점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판세 분석 보도는 ‘접전’ ‘각축’ ‘박빙’ ‘추격’ 등의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데서 보듯 이전의 경마식 태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주로 각당과 후보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는자신과 상대후보의 장·단점을 종합, 소개하는 수준이다.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는 중앙 정치권의 ‘대선 전초전’ 논리를 뒤따르면서 지방선거 자체의 의미를 부차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지방선거와 관련해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는 명색만 지방선거일뿐 실내용은 중앙당의 전략과 대선 후보들의 움직임이 주요 내용을 이룰 수밖에 없다. 실제 지방선거 관련 정보는 후보자 정견과 공략 소개 등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자체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중심에 놓고 현실적으로는 광역단위의 이슈와 쟁점에 지속적이고 차분하게 접근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한 중앙지 기자는 “지방선거를 자체의 의미보다 대선의 변수로 이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지방선거 관련 기사가 부족하고 지방선거 보도 역시 중앙당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후보들의 정책이나 공약이 비슷하고 선거가 진행되면 될수록 수렴 현상은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의미 되찾기 노력 기울여야

언론사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기자들로 별도의 취재본부를 구성하는 등 선거보도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중앙당 중심의 지방선거 접근법에서 벗어나 지역 쟁점과 현안 발굴 및 이에 대한 현장 밀착형 취재 관행이 정착되지 않는 한 변화된 지방선거 보도의 제 모습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중앙 일간지의 부산 주재 기자는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데스크의 요구사항은 중앙당 차원의 선거전략이 지방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가, 각 당 대선 후보의 움직임을 지역에선 어떻게 보는가 등이다. 지역 현안이나 쟁점 등에 대한 심층취재 지시를 받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지역의 독자들도 중앙의 움직임 이외에 타 지역 선거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모두 다루기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는 지방선거의 의미 자체를 퇴색시키는 것은 물론, 해마다 투표율이 낮아지는 데서 확인할 수 있는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이 지방선거를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으로 규정하고 득실 판단에 기초한 선거전략을 구사한다고 해도 언론은 이를 보도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지역별 쟁점과 현안에 대한여론을 환기시키는 등 지방선거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북대 신방과 권혁남 교수는 “지방선거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론의 공공적 기능에 해당한다”며 “이를 위해선 지금까지 정당이나 후보, 또는 언론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보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유권자 중심의 의제설정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역별 쟁점과 현안 등에 대한 심층보도는 지방지의 몫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지방 독자들의 경우도 중앙지 구독률이 심한 경우 9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적이다.

언론 스스로도 지방선거의 문제점에 대해 “‘풀뿌리 정당정치’라는 허울좋은 명분보다는 중앙정치의 지방확산 차단이 더 선결과제”(대한매일 5월 14일자 사설)라고 진단하고 있지만 언론이 이를 제어할 마땅한 방법을 찾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김동원 기자 wo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