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게이트가 터지고 잠시 숨을 돌리려나 기대했지만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런 와중에서 수지김 살해사건의 주범 윤태식씨도 뜻하지 않은 게이트를 기자들에게 ‘선사’했다.
그것도 잠시, 작년 12월 시작된 차정일 특별검사팀은 기자들을 또 한번 ‘취재전쟁’으로 몰아넣었다. 특검이 브리핑 제도마저 없애는 바람에 기자들은 거의 첩보원처럼 새벽까지 특검 사무실 주변을 암약하며 특종을 노렸다.
지난 3월말 이윽고 특검이 115일에 걸친 대장정을 끝냈다. 나름대로 진실 규명에 기여했다는 보람조차 느낄 새 없이 곧바로 최규선 게이트가 전면에 등장했다.
현직 대통령 아들까지 구속시킨 최규선 게이트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긴장감은 계속되고 있었다.
누가 법조기자들을 게이트라는 무한궤도 위에 올려놓았는가. 그건 나와 경쟁하고 있는 동료기자들이었고 한편 내 자신이기도 했다. 언론이 사회의 목탁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특종경쟁 속에서 수사진행과 관계 없이 늘 속보를 써내야 하는 중압감은 곧잘 부정부패와 싸운다는 사명감을 증발시켜 버리곤 했다.
사명감과 보람이 채워야 할 빈자리에서는 어느덧 회의감과 짜증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좀체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보도하는가. 이런 회의감 속에 빠져 있다가도 간간이 굵직한 특종을 터뜨려 주는 동료기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어느덧 게이트는 서서히 의혹의 베일을 벗고 국민에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기록하는 일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호쾌함이 아니라 밀림 속에서 정글도로 수풀을 쳐 나가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는 지극히 짜증스럽고 고된 작업이다.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일이 수개월 째 계속되는 가운데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마치고 기자실로 올라가는 길에 퇴근길 직장인들과 우연히 눈길이 마주쳤다.
‘나도 언제쯤 저런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그들의 눈초리가 “당신은 기사를 위한 기사를 쓰고 있지 않은가요”라는 질책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