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는 무너졌지만 앙시앙 레짐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느 네티즌의 말이다. 한 마디로 매크로 권력은 무너졌어도 마이크로 권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무너지지 않은 앙시앙 레짐의 중의 하나가 언론권력이다. 그래서일까? IMF의 수렁을 간신히 벗어나온 올해 우리 사회에서 제기된 화두 중의 하나가 바로 '언론개혁'의 문제였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언론은 전근대적이다. 정치권력은 언론이 비판한다면, 언론은 누가 비판해야 할까? 한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를 비판하는 수밖에. 그래야 비판과 감시의 고리가 어느 지점에서 끊겨 성역을 허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언론사들 사이엔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고 한다. 이제 이 전근대적인 관행을 깰 때도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비판하는 언론이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우리의 언론이 자기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는 여유와 유연함과 인내심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 언론은 너무나 정치적이다. 특정한 정당을 노골적으로 싸고돌기 일쑤다. 언론은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벌이는 게임 속에서 지켜야할 룰을 감시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있어도, 그 정당이 게임의 규칙을 어긴다면 매섭게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올해에는 제발 우리의 언론이 속 들여다보이는 정치기동으로 유권자가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려는 짓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우리 언론이 정치게임의 규칙준수의 여부를 감시하는 데에 제 역할을 한정하는 겸손함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 언론은 너무나 상업적이다. 발행부수를 뻐기는 짓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참고로 프랑스의 <르 몽드>, 독일의 는 발행부수가 40만을 넘지 않는다. 독일에서 2백만 부를 자랑하는 건 컬러사진으로 범벅이 된 황색지 뿐이다. 격조 있는 논조로 수백만의 독자를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저마다 미디어 무굴 제국이 되려고 부수경쟁을 하느라 선정적 기사를 남발하니 <선데이서울>과 같은 유서 깊은 잡지가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나는우리의 언론이 격조를 유지함으로써 선정적 기사로 가득찬 그 잡지가 복간하기를 기원한다.
우리의 언론은 너무나 보수적이다. 우경도 90퍼센트 이상의 초보수적인 사회분위기 때문일 게다. 이왕 보수를 하려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는 게 보수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라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껏 약발 떨어진 색채론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게 보수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를 변명하기 위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을 정당화하느라 귀한 지면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폭로성 기사로 대중들 중에 정치적으로 가장 후진적인 부분의 원시적 공격본능을 자극하려고 하지 말고, 진정으로 보수적 가치를 창조하는 이념적 생산력으로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 언론의 수준은 아시아에서도 최하위라 한다. 우째 이런 일이? 국민과 언론인의 교육수준이 낮아서? 아마 아닐 게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아무리 조직의 끈이 강고해도 찾아보면 자기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여지는 있는 법이다. 얼마 전에 발자크가 당시 프랑스의 기자들의 습성을 묘사한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150년이 흘렀어도 거기에 묘사된 프랑스 언론 의 상황과 우리의 언론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밀레니엄을 축하하면 안 된다. 그 엄청난 시차를 극복하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의 언론인들이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마이크로 권력자의 얼빠진 권력의지에서 나오는 허망한 자만심이 아니라 자기의 수준과 격조를 유지하면서 제 자존심의 최소한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나오는 그런 자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