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 국민은 ‘축구 열병’을 앓고 있다. 우리 대표팀과 ‘붉은 악마’의 붉은 색 웃옷도 동이 났다고 한다. 이미 500만벌이나 팔렸는데, 웃돈을 줘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 팀의 두 번째 경기가 열린 지난 10일에는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대형 화면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나 붉은 색 옷을 입은 국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열병이라기보다는 ‘축구 혁명’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우리 대표팀이 미국전에서 국민들이 기대하는 승리를 낚지 못했는데도 대표팀이나 히딩크 감독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잘 싸웠다, 포르투갈전도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격려가 더 많았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폴란드전에서 월드컵 참가 사상 최초로 1승을 거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기대에 못 미친 경기를 벌인 미국전 이후에는 대표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폴란드전에서 1승을 거둔 것도 국민들을 들뜨게 만들었지만 국민들은 우리 대표팀이 보여준 수준 높은 경기력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열렬한 성원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승패보다는 우리 대표팀의 경기 그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의 ‘가슴 폭폭한’ 현실에서 우리 대표팀의 경기는 국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청량제였고, 활력소였다. 세계적인 강호와 당당히 맞서 싸우는 모습에 국민은 스스로 히딩크가 됐고, 유상철 황선홍 안정환이 됐다.
사회과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집단적 끓어오름(集合沸騰·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설명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축제나 스포츠 등을 통해 집단적 흥분 상태에서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겨레가 단오·한가위 때면 탈춤을 추며, 씨름을 하며, 강강 술래를 부르며 느꼈던 감정이다. 우리 말로 하면 ‘신바람’이다.
우리 정치가 국민들 사이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려면 대표팀처럼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투표하자’는 신바람도 생기고 정치권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지난 40년 동안 우리 정치를 눌러 왔던 ‘3김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안티테제인 ‘박정희 시대’의 종말이기도 하다. 연말 대선에서는 정치권에도‘히딩크’와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국민들은 ‘정치 히딩크’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