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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는 줄 알면서 달려가는 꼴"

신문협회 이사회 판매경쟁 자제 결의문 채택 배경

김상철 기자  2002.06.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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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시장과 관련한 신문협회 차원의 결의문 채택은 이례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자율규제 논리를 무색케하는 판매시장의 과열양상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더욱 관심을 모으는 것은 결의문 채택 과정에서 언급됐던 일부 발언들이다.

지난 12일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신문사 발행인은 “논의 과정에서 ‘공정경쟁위에 떠넘기듯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자율규제로 안된다면 공정위에 이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또다른 신문사 발행인도 “‘우선 자율규약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제대로 안되면 추후 회의에서 신문공정경쟁위의 존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문협회는 신문고시 시행 이후 자율규약인 신문공정경쟁규약을 확정하는 한편 규약 운영을 위한 별도 기구로 각계 인사 11명을 위촉, 지난해 10월 신문공정경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자율규제 체제를 표방하며 시행에 들어간 신문공정경쟁규약은 경품 제공 등에 있어서 신문고시 보다 더욱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고시는 1개월 혹은 1년 동안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을 합한 금액이 같은 기간 유료신문대금의 20%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공정경쟁규약의 경우 무가지는 유료부수의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으며 경품 제공은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판매시장은 발신자 표시 전화기, 자전거 등으로 대표되는 경품 공세와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되는 무가지 난립 등으로 혼탁상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 신문사 판매국장은 “판매시장을 정상적으로 주도해야 할 주요 신문들이 오히려 혼탁상을 조장하고 있다. 모두 죽는 길인지 알면서도 달려가고 있는 꼴”이라며 “자체 규제가 힘들다면 차라리 공정위에 넘기는 게 더 현명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신문협회가 판매 관련 사고를 낸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멀게는 지난 77년 ‘신문판매정상화를 위한 결의문’을 내고 무가지 경품 제공을 일체 중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지난 96년 ‘지국 살해사건’ 직후 신문협회 판매협의회는 경품 제공, 강제투입 금지 등을 결의한 바 있으며 97년, 2000년 사고를 통해 자율규약 시행을 공표하기도 했다. 신문협회의 이번결의문 채택이 일회성 처방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선 정국에서 공정거래위가 민감한 사안에 손을 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신문업계의 자정 결의와 실천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김용백)는 이와 관련 지난 15일 성명에서 “시행 1년만에 신문고시는 독자들의 권리는 아랑곳 없이 불법적 무가지와 경품 살포로 신문부수 늘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신문협회는 ‘자율고시’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묵인하는 잘못된 관행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며 △신문공정경쟁규약 실천 △공정거래위의 시장 정상화 조치 단행을 촉구했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