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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경기장의 별종들

구병수 기자  2002.06.19 1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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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짜잔짜짠짠,

목이 터쳐라 구호를 외쳐대는 수많은 붉은 인파 속에 외딴섬이 자리한다. 태풍의 눈처럼 그 곳은 너무나 고요하다. 적막감 마저 흐른다. 경기의 흐름과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만이 서로 교차하며 날카롭게 부딪친다.

인간 본래의 가학성을 기괴한 페인팅과 옷차림, 몸짓과 소리로 토해내는 경기장 관중석의 한켠엔 별종들이 앉아 랩탑을 두들겨대고 있다. 바로 기자들이다. 수만의 관중에 둘러싸인 외딴 섬 안에 수백 명의 기자가 수십 억의 축구 팬들에게 경기 결과와 현장 분위기를 타전하기 위해 손을 재게 놀리고 있다.

구병수 CBS 문화체육부 기자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세계 모든 기자들에게 유효한 행동준칙일까. 감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원시적 공간에 수만의 관중이 악을 써대고 있지만 수백 명의 별종들은 끝까지 이성과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6월 4일 한국과 폴란드전 황선홍의 첫 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장은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나는 그만 내 두 발이 어느새 바닥에서 떨어져 있음을 느꼈다. 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 정보는 득점루트를 차분히 입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솟구쳐 올라 열광하라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나는 별종들 가운데에서도 또 다른 별종일 뿐이었다. 황선홍의 첫 골, 유상철의 두 번째 골, 한국의 사상 첫 승리 이 모두가 별종들에겐 풍성한 먹거리를 위한 좋은 반찬거리일 뿐이었을까.

대한민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붉은악마들의 손에서 손으로 대형 태극기가 물결처럼 퍼져나갈 때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번지는 뭉클함과 몸서리쳐지는 짜릿함을 이들은 느끼지 않는가. 왜 느끼지 못하랴, 이들도 2심방 2심실을 가진 사람인데.

다만 지면으로 그림으로, 목소리로 활어처럼 펄떡이는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현장의 열기와 흥분을 한땀 한땀 기사로 엮어내려는 식지 않는 직업정신이 좀더 앞선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곳곳의 경기장에서 공이 골문으로 빨려드는 순간 당연히 일어 나야하는 조건 반사적인 행동마저 제어하며 기사를 날리고 있을 냉혈한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파이팅, 별종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