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 포르투갈의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지난 14일. 시청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이어진 붉은 물결은 인도와 차도를 순식간에 덮쳤다. 광화문 주변에 근무하는 기자들에게는 월드컵 열기를 맛보는 즐거움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회사 입성’을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행정자치부를 출입하는 최여경 대한매일 기자는 지난 14일 오후 6시 15분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회사로 오는데 무려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평소 15분 남짓 걸리는 길이 사람들로 꽉 막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 기자는 “종로에서 오는 사람들, 광화문으로 오는 사람들과 부딪혀 한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며 “수습 때 실력을 발휘해 컴퓨터를 안고 길을 뚫었다”고 말했다.
박용근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는 인파에 밀려 회의 시간이 지나서야 회사로 들어왔다. “국세청에서 회사까지 10∼15분 정도면 가는 거리를 한 시간 반만에 들어왔다”는 박 기자는 “평소대로 시간을 계산해 출발했다가 오후 7시 팀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정으로 기자들의 발이 묶이면서 이날 팀회의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게다가 거대 인파가 몰리면서 핸드폰도 안 터지고, 회사로 들어가지도 못해 안에서는 보충 취재를 지시해야 하는데 곤혹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부 신문사에서는 아예 회의를 취소하기도 했다. 월수금 오후 부서회의를 하는 대한매일 경제부는 지난 14일에는 회의 대신 전화보고를 받고 현장 퇴근 지시를 내렸다. 그렇지 않고 회사에 들어오려면 한 두 시간 일찍 출발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기자들도 이날만큼은 불편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박용근 기자는 “다들 짜증내기보다는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에 절로 흥겨워했다”며 “한국전이 있을 때면 광화문에선 으레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는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 건 고통스럽지만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신나고 재밌다”며 “회사에 앉아 있으면 응원 열기와 함성 때문에 밖으로 안 나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으니 신문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박찬구 대한매일 사회부 사건팀장은 “대개 취재기자들은 현장에 있더라도 데스크는 현장을 직접 못 보지만 월드컵 응원만큼은 회사 근처에서 펼쳐져 데스크까지도 현장을 느낄 수 있다”며 “신문사가 시청가까이 있어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