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월드컵 열기와 흥분에 빠져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체 프로그램의 80% 가량을 월드컵으로 도배하고 있는 방송사와 마감시간에 쫓겨 한국전 승패를 뒤집어 버린 일부 스포츠신문들은 언론의 기본 책무를 벗어났다는 안팎의 비난을 초래하고 있다. 사망자 발생 등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길거리 응원에 대해서도 축하 물결이라며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데는 소홀했다.
방송 80%가 월드컵 프로그램
○…방송의 지나친 월드컵 일색을 지적하는 내부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방송의 80% 가량이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방송 뉴스의 70%가 월드컵 소식으로 도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도 좋지만 공영방송 책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17일자 노보를 통해 “24시간 가운데 20시간이 월드컵 중계나 하이라이트, 월드컵 관련 소식으로 도배되고 있다”며 “월드컵 열기와 환호성에 휩싸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할수록 공영방송으로서의 입지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MBC본부는 이어 “뉴스데스크의 경우 6월 들어 선거일 직전 2주일 동안 선거관련 보도가 하루 평균 서너꼭지에 그쳤다. 반면 한국전이 있던 날은 70꼭지에 이르는 ‘믿을 수 없는’ 수의 월드컵 관련 리포트가 전파를 탔다”며 “월드컵 취재에 쏟는 노력의 20%만 더 선거보도에 할애했어도 시청자들에게 떳떳한 공영방송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열린 한국-이탈리아전부터 1, 2TV 동시 중계방송을 해 전파낭비와 시청자의 볼권리 박탈이라는 지적을 사고 있는 KBS도 공영방송의 기본 책무를 저버렸다는 내부 비난에 직면해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22일 성명을 내고 “모든 방송이 월드컵만 외쳐대고 있는 지금, KBS까지 두 채널을 모두 월드컵 중계에 동원함으로써 공영성의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일부 스포츠지 지방판 “한국 졌다” 오보
○…지난 18일 한국 대 이탈리아 월드컵 경기가 연장전까지 이어지면서 마감시간에 쫓긴 몇몇 스포츠신문이 대형 오보를 냈다.
스포츠투데이는 지난 19일자 지방판 34면에 일본 교포들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한국이 이탈리아에 1대 0으로 졌다는 오보를 했다. 해당기사는 “이탈리아의 전반 선제골을 만회하지 못하고 경기가 종료되자 응원단은 끝내 울음바다가 됐다. 무너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바닥에 대자로 눕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후반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넣고, 연장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했다.
스포츠서울도 같은날 지방판 39면 ‘8강 진출 이모저모’ 제하 기사에서 “결국 한국이 연장전 끝에 2대 1로 패하자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그래도 잘 했다’고 서로 위로했다”고 보도했다. 이보상 편집국장은 “어떤 이유로든 잘못한 일”이라며 “평소엔 오후 11시 30분에 지방판이 인쇄돼 나오는데 이날은 경기가 오후 11시까지 가는 바람에 제작 시간이 촉박해 편집 과정에서 기사가 교체되지 못한 실수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과열응원 조장, 뒤늦게 사고 조심
○…“식지않은 감동” “하나된 열기” “만점 집회” “시민정신의 꽃”….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길거리 응원에 대해 우리 언론 역시 최고의 찬사와 의미 부여로 월드컵 열기를 뜨겁게 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은 길거리 응원을 대대적으로 중계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만 바빴고, 간혹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을 언급할 때도 ‘옥의 티’ 정도로 다루는 데 그칠 뿐 응원 후유증과 사고 주의를 촉구하는 데는 인색해 과열 응원을 조장한 게 아니냐는 눈총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