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개막 50일을 앞두고 “지금 우리의 전력은 16강 진출 가능성이 50%에 불과하지만 남은 50일간 매일 1%씩 높여서 반드시 16강에 진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우리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는 달리, 지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후보들은 20∼30%포인트 가량 열세인 지역에서도 무조건 ‘박빙’이라며 대책 없이 큰소리만 쳤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론조작’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선거법 108조에 의해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보도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중 여론조사 보도금지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우선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 보도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 유권자들이 승산 있는 쪽으로 가담하거나 반대로 불리한 편을 동정하는 효과가 나타나 유권자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뿐 아니라 일부 언론학자까지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갖춘 유권자를 여론조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을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보는 봉건왕조적 시각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으며 그에 동조해서 투표하지도 않는다. 또 악의적 여론조작을 우려한다면 많은 선진국들처럼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그 보도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적 또는 정부 차원의 감독기구를 설치 운영할 것을 요구해야지, 보도를 막자는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국갤럽의 지난 5월말 조사에서도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것이 좋다’ 45.1%, ‘발표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 17% 등 과반수가 공표하는 것을 찬성했다.
지난 수 차례 선거에서 보았듯이 여론조사 보도금지는 흑색선전과 유언비어를 통한 여론조작을 유발했다. 또 여론조사 보도금지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조사결과를 알 수 있는 사람과 투표일까지 그 결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운동 기간의 여론조사 보도금지는 적어도 선거 2∼3일 전까지 대폭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 대선도 투표일 전 23일간이나 여론의 흐름을 모른 채 암흑속에서치러진다. 또다시 ‘지금 박빙이니 한 표만 도와달라’는 거짓말이 난무할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