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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예상밖 선전에 기자들 '기진맥진'

박주선 기자  2002.06.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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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퇴근·취재경쟁 파김치…휴일도 없어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경기는 이겨야죠”





웃을까. 울까.

월드컵 한국대표팀의 승승장구에 기자들의 마음은 왔다갔다 한다. 16강에서 8강, 4강 진출이 확정되던 그 순간 ‘감격’과 ‘답답함’은 교차하고 있었다.

“이제는 스페인이 끝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갔다. 막상 취재석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한국팀을 응원하게 된다. 경기가 끝나면 ‘아, 오늘 끝났어야 하는데’ 한다.”

한국대표팀을 따라 한달여간 취재하고 있는 한 기자의 얘기다. “포르투갈과의 경기 시작 전에 다들 ‘이제 고생 끝’이라고 말했어요. 대전(이탈리아와 16강전) 경기는 취재계획도 없었어요. 다시 짐싸서 대전으로 갈 때는 다들 광주(스페인과 8강전)까지 예상하고, 출장 준비를 해 왔더군요. 이제는 요코하마 비행기표 예매까지 해 놓았고요.”

예상 밖의 한국팀 선전이 기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30일 대표팀이 머물던 경주에서 취재를 시작했다는 이 기자는 한달여간 대표팀을 따라 전국을 돌고 있다. 인천에서 경기가 열리던 날 새벽에 잠깐 집에 들어갔을 정도다. 일요판이 나오면서 토요 휴무도 옛날 얘기다. 토요일을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보내던 그 때와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요일 개념이 없어졌다는 것. 날짜는 잘 아는데 요일을 몰라 기자들끼리 서로 요일을 물어본단다.

못 쉬는 것도 고역이지만 취재 경쟁은 더 큰 스트레스다. “기사량이 많아요. 특히 한국팀은 작은 것 하나도 기사가 되거든요. 오후 8시 30분 경기가 10시 30분쯤에 끝나면 감독이나 선수들은 11시쯤에 봐요. 12시까지 기사 마감해야 하니까 감독, 선수 얘기듣고, 우왕좌왕하면서 부랴부랴 기사마감을 하죠. 저녁은 새벽 1시나 돼서 동료들과 한국 승리를 축하하면서 먹어요.”

그나마 월드컵 개막식 때부터 한국팀 취재를 시작한 기자는 행운이다. 월드컵 개막 보름 전부터 제주에서 한국대표팀 훈련캠프 취재를 했던 한 기자는 “스페인전 끝나고 집에 갔더니 아이가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있더군요. 월드컵 열기 덕분에 이제는 가족들도 이해해요”라고 한다. 한달 이상 출장에 피곤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몸 상태는 월드컵이 끝나봐야 알 것 같다. 아직은 긴장상태”라고 덧붙였다.

경기장 밖 취재 열기도 만만치 않다. 시청, 광화문에서 붉은악마 취재를 맡고 있는 한 사진기자는 “경기시작 서너시간 전에 현장으로 가요. 그때부터 경기 끝나고 환호하는 응원단, 거리풍경까지 취재하면 하루 10시간 이상 현장에 있어요. 한순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그렇죠. 좋은 앵글을 잡으려면 무대 앞쪽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엠프에서 나오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에요. 환청이 생겨요. 가장 힘든 거요? 지금까지 한국팀 경기를 한번도 못 봤어요”라고 말한다.

10㎏이 넘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관중 속을 뚫는다. 사람들로 꽉 막혀 10미터를 나가는데 30분이 더 걸린다. 전반전이 끝나면 신문사로 사진을 전송하려고 근처 PC방으로 달려가기 일쑤다. 옆에 앉아있던 또다른 사진기자는 “그렇다고 지기를 바라겠어요? 기자들도 한국 사람인데 이기는 게 좋죠. 단 져도 비난 안할 준비는 돼 있어요”라며 웃는다. 그들도 때론 붉은악마가 되고 싶어진단다. 지난 21일 민주당 출입 사진기자들이 ‘Be The Reds’ 티셔츠를 맞춰 입고 기분을 냈던 것처럼 말이다.

내근 기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종합지 체육부 한 기자는 “두 조로 나눠서 조별로 격일 야근을 해요. 야근 때는 밤 12시까지 일하고 아침에 출근해 다음날 오후 8시 30분까지 근무하죠. 한국전 때는 전원 야근을 하고요. 한국전 땐 이기고, 지고 양쪽 경우에 대해 아이템 지시를 받고 기사를 쓰니까 업무가 두배죠.”

주로 내근을 하는 스포츠신문 체육부 기자 얘기도 비슷하다. “평소엔 밤 12시 야근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했는데 월드컵 시작 후에는 이틀에 한번씩 해요. 한국전 때는 이틀 연속 야근도 하고요. 다음날에는 일찍 퇴근하긴 하지만 초판 때문에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해요. 피곤이요? 낮에는 다들 자느라고 정신없어요.”

물론 이들에게도 한달 전 16강 진출은 확률 낮은 일이었다. “월드컵 때문에 체육부로 기자들을 차출해오면서 타부서에서 불만을 보이자 14일 포르투갈전만 치르면 다 돌아간다고 했어요. 근데 아직까지 못 돌아갔잖아요.”

데스크라고 다를 것 없다. 종합지 한 사진부장은 “아침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한다. 월드컵 내내 이르면 오후 11시 30분 퇴근이다. 한국팀이 이렇게 잘 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반문한다. 스포츠신문 편집부 한 차장도 “대개 밤 12시, 한국전 때는 새벽 두 세시에 퇴근한다. 오후 8시 30분 시작하는 한국팀 경기땐 전반전 끝날 무렵부터 원고 받고, 사진 받고, 지면 체크하고 왔다갔다 한다. 경기를 봐야 좋은제목도 뽑을 수 있는데 편하게 볼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숙명 아니겠어요. 사무실 창밖으로 광화문 가득히 모인 붉은 악마들을 보면 책임감이 느껴져요. 소명의식이랄까. 우리가 지라고 해서 질 것도 아닌데 이기는 게 더 기분 좋죠.”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