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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미군사고 '초라한 1단'

우리의주장  2002.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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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월드컵 4강신화에 열광할 때 꽃다운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로 폭보다 넓은 궤도차량이 친구 생일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여학생들을 뒤에서 덮친 것이다.

유가족들을 더욱 절망감에 빠뜨린 것은 사건발생 10여일이 지나도록 중앙 언론사와 방송들이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온갖 매체들이 월드컵 소식으로 도배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일부 신문에서 초라하게 1, 2단 토막기사로 처리됐을 뿐이었다.

오히려 유가족들은 한국축구가 4강신화를 일궈냈지만 월드컵 보도 때문에 피해사실이 알려지지 않자 “월드컵 승전보가 오히려 문제”라며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2사단 공보실장 겸 대변인 브라이언 메이커 소령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석한 자리에서 종전 과실인정 입장을 바꿔 “그 누구도 힐난해야 할 만한 죄가 없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미군 작전수칙에 따르면 장갑차가 교행할 경우 반드시 일단 정지해야 하는 데도 사고차량은 차폭보다 좁은 도로를 질주하다 사고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민들은 이번 사건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미군부대 주변에서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탱크 한 대도 지나기 어려운 도로 위에서 어떻게 두 대의 탱크가 교행하도록 지시했는가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운전자 과실도 분명히 밝혀져야 하지만 도로 폭이 3m20cm 밖에 안된 상황에서 3m70cm 폭의 탱크가 지나도록 명령한 지휘체계상 문제점은 없었는지 시시비비가 반드시 가려져야 한다는 게 시민들의 주장이다.

미군 병력이 기동력을 갖춘 기계화부대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미군부대와 훈련장 부근에서는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 속출했는데도 당국과 언론은 침묵을 지켜왔다.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이 미군부대 앞으로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이다 중무장한 미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일 때도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의 자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위현장을 취재하던 일부 인터넷신문 기자들이 폭행을 당하고 무자비하게 수갑까지 채워지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8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미2사단본부가 위치한 캠프레드클라우드담장이 비무장상태 시민들에 의해 뚫린 사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3월 시민단체 회원들에 의해 국방부 정문이 뚫렸을 당시 이를 대서특필했던 언론들이 미2사단 담장이 뚫린 사실을 한발 늦게 그것도 목소리를 낮춰 처리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미2사단 지도부는 뒤늦게서야 사과할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혔으나 여전히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월드컵 폐막에 즈음해 국내언론이 여중생 장갑차 참사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언론이 나서 미군 철조망 속에 감춰진 진실들을 파헤쳐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