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개 돛친 듯 퍼져나가는 사이버 소문의 위력이 대단하다. 현대판 신문고인 사이버 공간에선 누구나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디어 민주화를 실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익명의 탈을 쓴 무책임한 사이버 소문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등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부산 모대학 학생이 장애인을 폭행했다는 제보가 각종 게시판에서 논란이 됐다. 네티즌들은 억울한 장애인의 편이 되어 대학생을 각종 욕설과 비방으로 몰아갔다. 언론사 인터넷에 ‘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며 사건 종결했음’을 알리는 기사가 나갔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무슨 뇌물을 받았길래 사실을 감추냐’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악의적인 거짓 제보와 이를 맹신한 네티즌들의 분노는 한 개인의 명예와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달 28일 중국에서 열린 한중 국가대표 축구경기에서 한국 관중이 중국 관중에게 폭행당했다는 사이버 논란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채 극단적인 자존심 문제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유학생 두 명이 중국 관중에게 폭행당한 사실은 뒤늦게 확인됐지만 네티즌들은 “그대로 갚아주자” “자장면 먹지 말자” 등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일본 닛칸 스포츠지의 모리야마 기자가 쓴 칼럼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외교통상부 확인 결과, 닛칸스포츠지에 기사가 난 적도 모리야마란 기자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넷 전문가들은 권력과 권위에 대한 네티즌들의 극심한 거부 반응이야말로 사이버여론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네티즌들은 약자가 강자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사실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순식간에 온갖 곳에 글을 퍼나르며 여론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박선희 조선대 신방과 교수는 “사이버 여론은 사적 경험에 의존한 글쓰기와 한쪽 입장만 듣고 일방적으로 판단해 버리는 경향을 보여준다. 특정 이해관계가 작용할 경우에는 왜곡된 편향을 초래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여론은 기존 언론의 권위를 무너뜨린 지도 오래다. 오보·표절 의혹을 지적하고 기성 언론이 외면한 사안들을 제기하며 기자의 비리·횡포를 고발하는 일이 활발해지면서 기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 최모 MBC 기자남대문서사건, 경향신문 ‘입 험한 여경’ 기사를 둘러싼 기자와 경찰간의 논쟁 등은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군 대표적 사례다. 최모 기자 사건은 한 경찰이 자신의 억울함을 인터넷에 호소하면서 빠르게 확산, 인터넷 신문이 발빠르게 보도하면서 결국 기자사회의 잘못된 행태에 경종을 울렸다.
경향신문 사건의 경우, 기자와 경찰의 상이한 입장 차이로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섣불리 실명을 공개해 기사화한 점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동료 기자의 글이 네티즌의 공감을 얻으면서 원색적인 여론재판은 줄어들었다.
한 신문사 간부는 “최근 경찰과 기자의 의견이 맞붙었을 때 똑같이 해명을 해도 네티즌들은 경찰 편을 많이 든다”며 “많은 사람들이 경찰이라는 권력기관보다 언론이 더 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언론에 더 많은 책임과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시민들의 인터넷 언론활동이 활발해질수록 기자들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방송국 인터넷 담당 한 기자는 “오랫동안 언론이 독점과 횡포를 일삼아온 점은 반성해야 한다”며 “사이버 여론의 악영향만 문제삼을 게 아니라 그들의 욕설과 비난에 담겨있는 행간을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