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97년 사망한 김준배 씨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하고 이를 국민 앞에 공표하였다. 이에 대해 그간의 노고와 성과를 인정하는 언론의 반응이 있는가 하면, 일부 신문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하여 위원회 결정을 비판하였다. 비판내용을 요약해 보면 “① 한총련 간부에 대한 이번 결정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대법원 판결에 정면 배치된다 ② 국보법폐지까지 권고했으니 위원회의 직무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③ 서해교전으로 국가안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마당에 국보법폐지 권고는 시점상으로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 등이다.
우리 법 체계상 실정법은 판례에 우선한다.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상 ‘민주화운동’의 개념을 구체적 사건에 적용·해석할 수 있는 권한은 위원회가 가지고 있으며, 위원회는 국가보안법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한정 합헌 결정취지를 참조하여 김준배 사건을 판단하였다. 또 대법원은 한총련 구성원에 대한 개별 형사사건에서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라고 판시하였고 위원회는 김준배가 한총련 투쟁국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위원회 결정이 대법원의 판결을 배척한 것은 아니다.
또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제30조는 “위원회는… 사건의 진상 등에 관하여는 공표하여야 하고, 의문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가 취하여야 할 조치를 권고하는 내용을 보고서에 기재하고 위 보고서를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준배 사건에서 국가보안법 개폐를 권고한 것은 의문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취해야 할 조치를 권고한 것으로 직무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서해교전이 일어난 시점에 국가보안법 개폐권고는 적절치 못했다는 제기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국가보안법을 통하여 서해교전과 같은 사태을 막거나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 곧 우리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와관련된 문제이다. 서해교전 등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개폐를 미뤄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 위기가 오니까 자유민주질서를 포기하자는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오히려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자유민주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상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회, 인권과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