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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아웃사이더가 본 월드컵열기

황영식  2002.07.18 1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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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이 땅을 달구었던 월드컵 열기가 슬그머니 식고 있다.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인파는 장관이었다. 월드컵 당시 한국을 찾았던 외국 관광객들이 으뜸 볼거리로 꼽은 것도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이었다니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 자신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리의 붉은 물결을 두고 한국 언론이 입을 모아 쏟은 찬미는 전례가 없었다. 처음 우리가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축제 마당이 펼쳐져 잠재했던 놀이 욕구가 폭발했다는 식의 해석은 괜찮았다. 거리 응원 열기의 원천을 우리 전통의 신명에서 찾는 것까지도 참을 만했다. 그러나 이를 우리 민족 특유의 잠재 에너지로 미화하고, 국운 운운해 가며 이 에너지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식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만명의 군중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고, 오 필승 코리아를 노래하는 모습은 때마침 북한이 10만명을 동원해 능라도경기장에서 펼친 대규모 매스게임 아리랑 축전에 못지 않았으리라. 더욱이 연습과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의 결과였으니 애초에 감동의 격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잠시 거리 응원에 끼어 든 순간 나는 숨이 턱에 차 올랐다. 비좁은 공간 때문이 아니었다. TV로는 발 디딜 틈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제법 넉넉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연상작용이 숨막힘의 이유였다.

합계 6년여의 일본 생활에서 나는 딱 한번 파라파라춤을 현장에서 보았다. 넓은 플로어는 500명은 넘을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음악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일제히 무대 위 리더의 동작을 그대로 본 따서 같은 춤을 추었다. 단순한 동작, 특히 팔동작 위주의 반복이 두드러진 춤은 적어도 아웃사이더의 눈에는 젊음의 열기 발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집단 환각을 부르는 종교적 의식, 또는 음습한 비밀 집회에서의 집단 서약을 떠올렸다. 일본 사회의 다양성으로 보아 군국주의 어쩌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나도 불현듯 이런 식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에는 몰개성과 몰아(沒我), 또래 집단에서 떨려 나지 않으려는 집단회귀, 춤이 끝나고 난 후 더욱 깊어질 고독 따위가 넘실거렸다. 그들은 무대 위 리더의 손짓에 따라 언제 어디로든 달려 갈, 전체주의의 부속처럼 느껴지기도했다. 불행히도 거리를 덮은 붉은 물결 속에서 나는 똑같은 느낌에 소스라쳐야 했다.

그러나 제호까지 대~한으로 바꾸는, 광기와 열기의 경계로 이어진 6월에 그런 이단은 느낌조차 용서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무슨 비밀처럼 감추었다가 월드컵 열기가 빠지는 눈치라서 조금씩 내비쳤더니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터져 나왔다. 이러니 우리 언론의 사정없는 쏠림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 큰 환희와 흥분 뒤의 깊은 증오와 분노가 표적을 찾아 마구 달리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