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정오 프레스센터 앞. 30여명의 시사만화 작가들이 모였다. 양손에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고와 관련해 직접 그린 만평을 확대해 붙인 피켓을 들었다. 정비한 대열 앞에는 “여중생 압사 주한미군 한국 법정에 세우고 불평등 소파 즉각 개정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 2000년 4월 구성된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의 첫 거리 집회였다.
백무현 회장은 “온 나라가 월드컵에 묻히면서 언론이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고를 너무 외면했었다”며 “회원들의 자성이 있었고 미군의 재판권 이양을 위해 우리도 일조하자는 뜻에서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시사만화작가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군은 재판권을 즉각 이양하여 압사 피의자들을 한국법정에서 재판받게 할 것 △부시대통령은 한국민에 공개 사과할 것 △정부는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모든 정치,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 △언론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적극 협력할 것 등 4개항을 촉구했다.
시사만화작가회의는 또 “우리들의 딸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음에도 월드컵 열기에 들떠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데 대해 언론의 한 구성원으로서 뼈저리게 자성한다”며 “무엇보다 주한미군의 살인적 폭력에 대해 무비판적인 이성이 돼 버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바른 언론인임을 망각한 본분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는 시사만화작가회의 회원들 외에 문정현 신부, 전영일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 등 총 4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프레스센터에서 미 대사관까지 거리행진을 했다. 집회 후 시사만화작가회의는 만평 피켓을 모아 ‘미국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에 기증했다.
백 회장은 “한국의 지식인 특히 언론인은 그동안 주한미군의 폭력에 대해 너무 관대했다”며 “언론인들이 잘못된 한미관계에 대해 올바른 지적을 했으면 이같은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집회가 잘못된 한미관계에 대한 지식인들의 집단화된 무비판에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면’이 아닌 ‘집회’라는 방법을 놓고 내부 논란 끝에 거리로 나섰던 이유이기도 하다.
손문상 부산일보 화백은 “거리에 취재하러 나간 적은 많았지만 직접 집회 주체가 된 것은 10여년 만”이라며 “미대사관까지 걸어가면서 옛날 기분도 느꼈다”고 얘기했다. 손 화백은 또 “월드컵에밀려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작가들의 부채감이 있었다”며 “중요한 것은 재판권을 이양할 수 있도록 지속적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