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기자실에 촌철살인의 명인이 있어 주5일 근무 협상과 관련해 감동적인 어록을 남겼다. 예를 들어 ‘양치기 소년.’ 지난 2년여 동안 ‘타결 임박’이니 ‘사실상 결렬’ 등의 기사를 시제만 바꿔서 10여번씩 써댄 기자들을 질타한 말이다. 작년 말쯤, 협상이 무르익었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노동계 대표에게는 ‘고뇌하는 새가슴’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지난 22일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이 끝내 결렬되자 그는 ‘건망증과 무책임’이라고 점잖케 상황을 정리했다. 과연 그날 밤 협상장에서는 “산업현장의 불합리한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자”는 진지함도, “OECD 국가 중 가장 긴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2000년 10월의 노사정 기본합의에서 분명히 열거된 목표들인데도 말이다. 재계는 협상을 깰 결심을 하고 나온 듯 보였다. 심지어 경총의 한 간부는 장관급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창성 회장의 겨드랑이를 끌고 나오는 ‘방자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은 “주5일 근무는 1기 노사정 위원회에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논의된 것인데, 2기 노사정 위원회에서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가 들어가면서 본질이 흐려졌다”고 주장해 논의 자체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계가 노조로서는 치명적인 ‘정리해고’에 동의해 준 대가였는데 그 사실을 잊은 것일까.
“모든 수당을 임금보전 대상으로 법 부칙에 열거하자”는 노동계의 주장도 지나친 것이었다. “개별 사업장의 형편이 있는데 어떻게 법으로 규제하느냐”는 재계의 반박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주5일 근무의 법제화는 정부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기 시작하면서 벌써부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간에도 사회부 기사와 경제부 기사, 현장기자와 사설의 흐름이 반대로 나간 경우는 허다했다. 앞으로는 특정 정당 후보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노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회의론도 걱정스럽다. 올해 초 다 꺼져가던 주5일 근무제 논의의 불씨를 살려낸 노동부의 모 국장에 대해 “안 되는 협상을 왜 살려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러나 복지부동이 최선의 처세술인 정권말기에 그래도 노사대표들을협상장에 끌어내기 위해 열심히 뛴 그의 노력이 폄하돼서는 안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논의는 정쟁의 대상이나 회의론의 제물이 돼서는 안 된다. 연간 2497시간의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시간당 생산성은 미국과 일본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은 분명히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