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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선거 '첨병'…전문가 집단 변모

대선주자 언론팀 분석

전관석 기자  2002.08.28 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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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노무현 언론팀 출신·성향 대조적

정몽준 캠프 합류늘어…‘중량급’ 구성 예상





과거 대선후보들의 언론팀은 후보의 입장을 알리는 ‘전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보진영의 공약과 주장 등을 언론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운동의 중심이 ‘거리’에서 ‘미디어’로 옮겨지면서 언론팀이나 언론특보들의 역할과 위상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공식 입장뿐만 아니라 후보들의 의중과 심중까지 전달하는 핵심 참모로 부상하고 있고 실무적 기능과 역할도 전문화되고 있다. 정책이나 공약의 내용, 발표의 적절한 시기에서부터 말투, 옷차림까지 후보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 위상 높아져

대체로 대선후보 언론팀은 업무 성격상 언론계 출신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당이나 행정부처에서 언론관련 업무를 맡았던 인사들이 일부 참여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진영의 경우 국장급 출신들이 많은 반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진에는 차장급의 개혁성향 인물들이 많다.

이 후보 쪽은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고흥길 의원과 경향신문 부국장 출신의 이원창 의원이 특보단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가운데 KBS 보도제작국장을 지낸 양휘부 특보가 방송쪽을, 한국일보 정치부장 출신의 이종구 특보가 신문쪽을 맡고 있다. 언론계 출신은 아니지만 이번 8·8 재보선 종로지역 후보로 나서 국회입성에 성공한 박진 씨도 출마전 이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아 주로 국제공보 업무를 수행했다.

노 후보쪽은 14년간 노 후보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KBS 작가출신의 이기명 씨가 특보단의 좌장격인 언론문화고문직을 맡고 있다. 이 고문은 언론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로 알려져 있다. 당내엔 MBC 사장 출신인 강성구 의원과 SBS 국제부장을 지낸 전용학 의원이 언론관계를 맡고 있다. 실무진의 경우 지난 민주당 경선 당시 ‘촌철살인’의 간결하고 핵심적인 논평으로 큰 활약을 했던 한겨레 출신의 유종필 공보특보가 여전히 노후보의 ‘입’ 역할을 하고 있다. 당 출신인 김현미 당 부대변인은 노 후보의 일정과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남영진 전 기자협회장과 한겨레 동경특파원 출신의 박종문씨도 특보단의 일원이다. 여기에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공보특보였던 정순균 전 중앙일보 사회담당부국장도 최근 언론특보단에 합류했다.



‘보충학습’으로 이미지 교정

언론특보팀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후보 이미지.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과거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딱딱하다’ ‘차갑다’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 기자회견이나 간담회가 끝나면 서둘러 자리를 떠버리고 기자들과의 ‘편한 만남’에도 인색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모습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있었던 지난 3월, 언론 특보단에 의해 ‘보충학습’을 받은 후 거의 ‘교정’됐다는 평이다. 지금은 안면이 있는 기자들과 서슴없이 악수하는 것은 물론 농담도 던지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출입기자들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개인적인 안부를 묻기도 해 화제가 됐다. 한나라당을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97년 대선 때와 비교하면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반대의 측면에서 많이 다듬어졌다. 특보단이 노 후보에게 한 주문의 핵심은 ‘말투’였다. 비교적 억양이 세고 직설적이어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의미가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노 후보는 비유나 사례 등의 설명을 자주 덧붙이는데 이것을 기자들이 잘못 해석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특보단의 노력으로 인해 말투도 부드러워졌고 표현도 간결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노 후보의 단점은 기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잘 외우지 못한다는 점. 기자를 당직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특보단은 노 후보에게 기자들과의 ‘스킨십’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주문 때문인지 노 후보는 최근 지역으로 이동할 때 전용 차량을 두고 기자단 버스에 동승해 대화를 나누는 등 한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 명륜동 자택을 개방, 출입기자들과 비빔밥 식사를 한 것은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주당 한 출입기자는 “예전엔 기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듯 했으나 최근엔 함께 식사를 하거나 일상적인 대화도 많이 하는 등 변화된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언론과 후보와의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도 언론특보들의 주된 임무. 이회창, 노무현 후보 모두 일부 언론사와는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다.

이회창 후보의 경우 이른바 ‘빅3’로 불리는 조·중·동과의 관계는 다른후보들에 비해 원만한 반면 방송사 특히 MBC와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다. 언론문건과 관련 서청원 대표가 “방송은 민주당 시녀”라고 말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인 상태. MBC와는 소송 일보직전의 충돌 상황이 몇차례 빚어졌고 소속 의원들의 출연거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 후보 장남병역기피 의혹과 관련 방송사의 보도에 불만을 터뜨리며 ‘공정방송특위’를 구성했으며 감사원법을 고쳐 MBC를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노무현 후보는 조선일보와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 노 후보도 이들 언론사에 대해 여전히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조선일보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없어 이런 상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예상. 당이나 특보단 일부에서 ‘관계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을 내세웠으나 최근 민주당 역시 당 차원에서 조중동에 대한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어 불편한 관계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표 의원실서 공보역할

잠재적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와 정몽준 의원의 경우는 특보단이나 언론팀을 따로 두지 않고 당과 의원실에서 공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기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둬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박 대표도 매주 화요일 오전 당사에서 정례적으로 기자들과 티타임을 꾸준히 할 정도로 최근 언론 관계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박 대표의 언론 창구는 KBS 출신으로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김기덕 공보특보가 전담하고 있다.

급부상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의 경우 대선 출마가 확정되면 다른 후보 못지 않은 ‘중량급’ 특보단이 구성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몽준 의원을 오래 취재해 온 한 기자는 “정 의원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고 정주영 회장의 국민당 시절 언론관계나 홍보를 담당했던 비서국 사람들이 대거 규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정몽준 의원 주변에 포진돼 있는 언론계 출신인사들은 적지않다. 정 의원의 후원회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청운연구소’의 홍윤오 실장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다. 김상진 축구협회 부회장 역시 한국일보 정치부장 출신이며 정종문 축구협회 자문위원은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이다. 한국일보 출신인 정광철 씨도 최근 정몽준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자신의언론관에 대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언론들과의 관계는 대체로 무난하다. 통일국민당을 이끌고 92년 대선에 나섰던 고 정주영 씨는 당시 조선일보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지난 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는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 파리특파원을 거쳐 88년부터 언론노조 1∼3대 위원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당시 함께 활동하다 현재 각 언론사의 국장급으로 성장한 ‘동지’들이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언론노련 위원장으로서 언론개혁의 산파이자 전도사 역할을 한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고, 이것이 대선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기자 출신답게 언론계의 생리를 잘 알아 기자들을 상대할 때 분명한 소신을 갖고 얘기하는 등 화제를 주도하는 편이다. 권 대표는 “실천과 정책으로 국민에게 인정받으면 언론은 따라온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현재 민노당은 대변인실에서 언론과 관련한 일들을 총괄하지만 조만간 정책단 산하에 언론팀을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팀장엔 6·13 지방선거에서 용산구청장 후보로 나섰던 김종철 씨가 유력하다.

8·8 재보선을 전후로 불거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 병역기피 의혹에 대한 정치공방과 민주당 신당창당 논쟁 등으로 인해 대선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들어서면 후보간 경쟁은 곧바로 언론특보간 설전으로 나타난다. 언론과의 관계를 선점하기 위한 이들 특보단의 물밑 경쟁과 ‘입씨름’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특히 선관위가 미디어를 선거운동의 중심에 두는 ‘선거공영제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어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언론특보간 경쟁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전관석 기자 sherp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