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칼럼]'환경 이데올로기'

이수영 차장  2002.08.28 00:00:00

기사프린트

이수영 강원도민일보 편집부 차장





“요즘 이 동네 많이 망가졌네. 몇년전만 해도 맑은 실개천이 흐르고 초가집도 한 채 있던 그림같은 곳이었는데… 인심도 그때 같지 않아.”

오랜만에 다시 들러보는 시골마을은 번번히 실망을 주기 일쑤다. 그래서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때론 원망스런 눈길로 그 마을 사람들을 째려보기도 한다. 이번 휴가길에 처음 가봤던 ‘귀둔’이라는 마을도 그랬다. 인제군 귀둔은 강원도에서도 오지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골이다.

시골같은 시골을 만난지가 오래됐다는 생각에 무작정 찾아갔던 귀둔은 그러나 몇 번씩 ‘산멀미’를 하고 땀을 두어말씩 쏟아내며 넘었다던 오지가 아니었다. 인근엔 민박집이 있고 마을 한복판까지 연결되는 신작로가 매끄럽게 뚫려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혹은 중앙의 언론이 강원도나 다른 지역에 대해 느끼는 실망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강원도의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도 그같은 안타까움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환경을 지켜야한다’는 명제는 그래서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시대의 명령으로 힘을 발휘한다. 지당하신 ‘환경이데올로기’는 그래서 그쪽 사람들에겐 폭력적으로 작용한다. 주민들이 똘똘 뭉쳐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해보지만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그들의 논리는 ‘반환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월 동강댐 수몰지역으로 지정돼 10여년 동안이나 맘 고생을 해야 했던 정선군 귤암, 가수, 운치, 덕천 주민들은 댐 백지화 이후 동강 잠수교 착공소식에 들떠 있었다. 강 건너 이웃집에 마실을 다닐 수도 있고 경운기로나마 더 큰 장터에서 물건을 살 수 있고 급한 환자가 생겨도 단숨에 응급실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사 착수 2주일만에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환경단체들이 공사중 흙탕물 발생에 따른 생태계 파괴문제를 제기하면서 공사가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자치단체도 ‘환경’의 위력 앞에서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후 다리는 완공돼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자축행사를 갖기도 했지만 그때까지 그들이 겪었던 우여곡절은 아직 ‘멍’으로 남아있다.

생태계 보전구역의 축소를 우려하고 자연환경보전지역 지정을 제안하는 내용의 기사와 사설들이 쏟아져 나오면 독자들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 대상 지역 주민들은 그런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천혜의 비경이고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