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을 출입한 모든 기자들은 지난 2월 수도권 고교평준화 배정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과 학교를 가진 도교육청은 2∼3년 전부터 학부모들의 농성장으로 변해있다.
신도시 주민들의 평준화 요구 집회, 특정학교를 평준화에서 제외하라는 특수지(평준화 제외학교) 지정요구 집회, 특수지로 거론되는 학교들의 특수지 지정 반대 농성 등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집회 천국이다.
출입기자들도 연일 계속된 집회로 농성이 취재감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 배정 발표일 기사를 송고한 뒤 오후 5시 브리핑룸(경기도교육청은 기자단을 해체하고 기자실을 브리핑룸으로 전환한 상태)을 나오자 학부모 20여명이 “배정이 잘못됐다”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일반직은 정문을 막고, 전문직들은 이들을 설득하는 너무나 익숙하고 예상했던 장면이다. 함께 나온 기자들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오히려 누군가 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하면서말이다.
그리고 편안히 잠을 잔 다음날 도저히 일어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배정오류가 터졌다. 그것도 학부모가 항의하는 내용이 너무나 이상해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오류가 밝혀졌다는 것.
출입기간이 남들보다 길었던 나로서는 학부모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오류를 의심할 수 있었거나 쉽게 확인할 수도 있었다. 참으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종한 기자가 없다고 자위할 수는 있었지만 상당기간을 선배들과 후배들의 눈빛을 피했다. 10년을 훌쩍 넘긴 기자생활에 심한 자괴감이 들었던 기간이었다.
수습기자들이 들어오면 목에 힘주어 강조했던 “기사와 특종은 작은 것에서…”라고 말했던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만 당시의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작은 목소리, 익숙한 주장이라도 스스로 판단해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현장을 지키고자 다짐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도교육청에서 항의하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학부모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