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8년 겨울 북한 당국이 보낸 무장간첩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주장한 두 명의 전현직 기자들에게 3일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이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낸 조선일보는 이로써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참살 당한 이승복(당시 9세)군의 ‘용기 있는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며, 이를 특종 보도한 당시 조선일보의 기사는 ‘소설’이나 ‘작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고 썼다. 법원은 대법원 판결로 형이 확정될 때까지 이들 두 사람의 구속을 유예한다고 밝혔고, 피고소인인 김주언 언론재단 이사(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와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은 곧바로 항소했다.
북한의 무장간첩들이 고 이승복군을 포함해 나이 어린 세 남매와 그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것은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할 잔인무도한 만행이었다. 유족들은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념과 명분으로도 이 학살은 정당화될 수 없다. 직·간접적인 당사자들은 죄값을 치르고, 살아 있는 동안 속죄해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승복군의 죽음은 그러나 ‘용기 있는 죽음’이기 이전에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순진무구해야 할 아홉 살 소년은, 유일한 생존자인 형 학관씨의 진술에 따르면 무장간첩들이 ‘너는 남한이 좋으냐, 북한이 좋으냐’고 묻자 ‘북한은 싫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답했고, 이 말 때문에 입이 찢겨 죽었다. 아마도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공산당이 싫다”고 한 마디 토하고 꽃봉오리째 꺾인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이념과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그는 분단체제의 희생양이었다. 그 죽임이 정당화될 수 없듯이 그의 죽음은 미화나 성화의 대상도 아니다. 반대로, 가정이지만 그가 자기 뜻과는 달리 “북한이 좋다”고 말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라는 두 언론인의 주장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이 신문이 시사하듯이 양민 학살이라는 이 사건의 성격을 희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 간첩들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는 실체적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의 주장대로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라고 하더라도그날의 학살은 그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9·11 테러 당시 의도와 관계없이 숱한 오보가 있었지만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희생됐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승복 사건 오보 논란의 본질은 사실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자세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특정 보도를 둘러싼 언론계 내부의 시비를 토론과 논쟁을 통해 풀어가려고 하지 않고 법원에 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