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의혹 보도와 관련, KBS MBC SBS YTN 등 방송 4사에 보도지침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MBC를 아예 국정감사 대상으로 포함시키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한나라당은 MBC는 물론 언론노조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방송협회 등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이 지침성 공문사태에 대해 일정하게 사과의 뜻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심인지는 분명치 않다.
짐작컨대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신문으로 평가받고 있는 몇몇 신문들처럼 방송도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된다면 당과 후보에게 이익이 되고 한나라당의 차기 집권이 더욱 분명해지리라는 내부 계산이 있음직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짧은 한나라당의 오산이다. 모든 언론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은 대체로 ‘조폭’ ‘하이에나’ 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쉽게 말하면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한나라당이 언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 특히 일부 언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각별하게 잘못된 믿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나라당은 영향력있는 신문들과 더불어 정권을 잡고 집권의 첫 단추를 끼우는 행복을 누리고 싶겠지만 문제는 이 행복할 것 같은 조합이 실제 행복하지도 않을 뿐더러 길게 가지도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한나라당에게 그것은 오히려 헤어나기 어려운 덫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일부 언론은 고삐풀린 권력으로 존재하고 있고,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집단은 이들 언론권력 집단에게 대체로 비굴하게 처신하고 있다. 힘으로 제압해서 이용하기도 했지만 정치와 이들 언론의 폭력적 관계는 이윽고 은밀한 공생의 관계로 변해왔고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지금 해야할 일은 짧은 셈법으로 방송사에 지침성 공문을 보내거나 불만처리 차원에서 스스로도 모순되는 방송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뜻을 제대로 판단하고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정치와 언론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정말 우리 언론의 문제를 개선하고 싶다면 보도지침 같은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언론운동에 열심인 시민사회단체나 언론노조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묻고 그 답을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나라당 스스로에게는 물론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몇 년이 강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