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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진상규명위 활동 종료…"언론은 뭐했나" 비판도

박주선 기자  2002.09.18 14: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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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들 “미제사건 추적 이제부터” 한목소리





“한국 사회는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 형태를 종속,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발전된 내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릇된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 언론 외에 그 역할을 할 집단이 없다.”

지난 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이 완료됐다. 그간 진상규명위는 군사독재시절 의문사한 최종길 교수, 허원근 일병, 인혁당 사건 관련자 등에 대한 진상을 밝혀냈다. 대다수 언론은 조사 결과를 보도해왔고 활동시한인 16일을 전후해 활동연장을 촉구하는 등 진상규명위 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길게는 사건 발생 28년이 지나도록 진실찾기에 무관심하다가 이제야 조사 결과를 받아쓰는 데 대한 아쉬움도 제기되고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7년 10개월간 옥살이를 한 임구호 씨의 얘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74년 4월 26일자 동아 조선 한국 등은 1면 머리기사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민청학련 사건 중간수사상황 발표 내용을 보도했다. 세 신문은 ‘폭력데모로 노농정권 수립 계획/인혁당 조총련 등이 배후 복합작용’ 등의 스트레이트 기사와 함께 ‘수사상황 발표전문’을 게재했다. 같은날 조선일보의 사설 ‘불순세력의 학원침투-민청학련 사건의 중간발표를 보고’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강물을 흐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몇 명의 극렬분자가 학원전체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일이다. 학생들은 외부 불순세력침투로부터 학원을 수호한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75년 4월 10, 11일자 이들 신문의 1면에는 ‘인혁당계 8명 사형 집행’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실린다.

그 후 이 사건은 진상규명위가 지난 12일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는 발표를 할 때까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99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이를 재조명한 정도다. 간첩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치사 당한 최종길 서울대 교수, 안기부에 의해 타살된 중앙대 안산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 씨, 군에서 타살된 허원근 일병, 녹화사업으로 강제징집돼 숨진 한희철 씨 등 진상규명위가 지난 2년여간 진상을 밝힌 대부분의 사건이 그렇다. 이 가운데 89년 이내창씨 사망 직후 한겨레가 안기부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면서 8년간 법정공방을 벌였던 일은 평가할 만하다. 이후에도 간간이 몇몇 시사프로그램이 진실규명에 나선 예가 있지만 대다수 언론은 관련 사건의 의혹제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임구호 씨는 “식민지 잔재, 50년 남북전쟁으로 인한 상처, 군사독재 시절 반민주 인권유린 등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해야 하는데 언론은 어렵고 귀찮은 일에 관심이 없었다”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피해자들이 400여일간 국회에서 농성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준 교수(경희대 법학과)는 “70년대에는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우리도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언론이 나설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한다”며 “그러나 90년대 이후 언론은 말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바뀌기만 하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밝혀질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며 “국가의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은 유가족이 아닌 사회가 나설 일이다. 바로 언론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활동은 끝났지만 언론의 역할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상규명위가 시간에 쫓겨 ‘불능’으로 남긴 미제 사건은 물론 군사독재에 의한 죽음으로 규명된 사건 역시 그 배경, 관련 인물 등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임씨는 “의문사진상규명위 발표로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지금까지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어둠 속의 발버둥이었다면 이제는 어디로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목표지점이 보이는 상황이다. 왜 사건을 조작해 사형으로 내몰았는지, 그 정치적 배경은 뭔지, 누가 지휘를 했는지가 조명될 때 당사자들은 완전복권 되고 명예회복이 된다”고 말했다.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