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자발적 결사체로서 이 땅의 민주화와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투쟁과 봉사를 계속해 온 협회 35년의 연륜은 참으로 감회어린 것이다.
물론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다. 시대의 가시밭길, 독재의 암울과 질곡을 헤치며 숨가쁘게 당도한 오늘이다. 많은 좌절과 아픔이 35년 나이테에 켜켜이 숨어 있다.
성취도 많았다. 언론과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압제에 온몸으로 항거해 언론인의 혼이 살아 있음을 알렸고 국민에게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널리 일깨웠다. 고비고비마다 몸던졌던 선배들의 헌신과 노고는 한국 언론계의 자랑스런 유산이다.
그러나 35년 역사를 반추만 하고 있기에는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이 너무 급하다. 선배들이 그토록 희구했던 자유언론, 민주언론, 참언론의 실체는 아직도 이 나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국 언론은 외양으론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거대한 사옥과 첨단 시설, 엄청난 발행부수와 영향력.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딴판이다. 극심한 상업주의와 선정주의, 비민주적인 소유구조, 변함없는 권언·권경 유착, 흔들리는 편집권, 독자무시의 취재와 왜곡보도, 무법에 가까운 판매 광고시장 질서, 난마처럼 얽힌 경영의 불투명성 등등 숱한 문제들이 장승처럼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다.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권력의 탄압은 확실히 완화됐고 언론의 권한은 확대됐다. 장관들을 낙엽처럼 떨어뜨릴 정도로 언론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감이 있다. 하지만 이같은 힘의 과시와 뽐냄이 언론발전의 징표일 수는 없다. 힘의 도취에서 깨어나 진실한 질문이 내면에 던져져야만 한다. 언론은 과연 누리는 권한과 자유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위임된 역할을 완수해 가고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 국민들의 개혁과 변화를 강도 높이 주문하면서 정작 자신의 개혁엔 몸을 빼는 이중성이 철저하다.
물론 외견적으론 구조조정 등의 시늉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아니었다. 기구를 개편하고 사람을 줄이는 몸짓은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방편은 될지언정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본질적인 부분을 손대야한다.사주에 집중된 소유구조 개선, 편집권의 독립, 조직의 민주화, 경영행태의 투명성 등이 그것이다.
사주와 경영진만이 아니다. 언론인 스스로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보도, 늘어나는 명예훼손, 터져나오는 비리, 촌지수수 관행, 권언유착적인 행태, 미흡한 직업적 사명감과 윤리의식 등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아 있다. 언론계가 이처럼 자기개혁에 질척거리는 사이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날로 커지고 있다.
모두가 변하는데 언론계는 왜 변하지 않느냐는 질타가 갈수록 쟁쟁하다. 이러한 압박을 언론계가 언제까지고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실 개혁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원칙으로 회귀하자는 것,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자는 것,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만들자는 것, 갓길을 버리고 정도를 걷자는 것이다. 방송개혁이 한숨 돌리려는 지금 언론개혁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목표는 한국의 언론매체, 특히 신문을 명실상부한 공적 매체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사주의 성향이나 자사 이기주의에 강하게 얽매인 언론이 아닌 국민과 공익의 진정한 대변자요, 봉사자가 되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언론계는 더 이상 변화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뼈를 깎는 자기개혁을 감행해야만 한다. 기자들은 높은 직업윤리와 도덕성,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추스르고 경영진들은 원칙과 정도에 입각한 건전하고 올바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기자협회는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주어진 사명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는 언론개혁을 위해 회원은 물론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단체 인사들과 힘을 합해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요구나 논의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언론개혁이 구체적인 실천과 추진의 단계로 진전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