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지난 23일 사퇴한 가운데 언론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추측성 보도를 하고 피해자의 신상을 드러내는 등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지난 23일과 24일 성명을 내어 “피해자의 입장을 통해 스스로 밝힌 내용을 넘어 피해자를 드러내려는 모든 시도는 명백한 2차 가해다. 공식 보도자료 내용과 상치되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인해 성폭력 사건 문제의 본질이 흐트러지고 있다. 아니면 그만 식으로 일단 터뜨리는 보도 행태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부산성폭력상담소가 성명에서 언급한 “근거 없는 가짜뉴스” 중 하나는 “부산시 측이 피해자에게 총선 이후 사퇴 절차를 밟기로 제안했다”는 부분이다. 지난 23일 KBS는 오 전 시장 사퇴 기자회견 직후 단독을 달아 온라인에 <오거돈 사퇴 “총선 이후로...”, 사퇴서 ‘공증’까지 받았다>를 보도했다.
KBS는 이 기사에서 “오 시장이 정무라인을 통해 이달초부터 피해 여성과 사퇴 여부에 대한 협상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부산시는 총선을 코 앞에 앞둔 민감한 상황을 감안해 총선 이후로 절차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대해 피해 여성 또한 부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부산성폭력상담소가 “부산시 측이 사퇴 시점을 총선 이후로 하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기사 수정을 요청하자 KBS는 이날 오후 6시쯤 해당 기사 제목을 <오거돈 사퇴, ‘공증’까지 받았다...“정치적 이용 안돼”>로 바꾸고, 부산시의 총선 이후 사퇴 제안 대목을 삭제했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24일 ‘총선 이후’라는 키워드로 네이버에 올라온 뉴스를 검색한 결과, 국민일보, 뉴시스, 동아일보, 서울경제,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이 총선 이후 사퇴 제안을 의혹 수준이 아닌 확인된 사실로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자 사설에서 “오 시장은 피해자에게 ‘총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상황이니, 총선 이후 사퇴하겠다’고 제안해 사퇴 확인서를 쓰고 공증까지 받았다고 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정치적 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지난 23일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힌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피해자의 신상을 드러내는 보도도 여전했다. 피해자는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은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이다.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며 “제 신상을 특정한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 일체를 멈춰주시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특히 부산일보와 한겨레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측에 따르면 지난 23일 부산일보와 한겨레는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는 정보를 자세히 보도했다. 상담소의 요청으로 문제가 된 내용은 수정됐다.
한겨레는 문제가 된 온라인 기사와 24일 지면에 “한겨레는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소식을 전하는 오전 11시37분 온라인 기사에 피해자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겼다는 독자 의견을 수용해 기사를 수정했다. 해당 표현으로 피해자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성범죄 보도에 있어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하겠다”는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을 만한 언론 보도는 지속됐다. 지난 24일 네이버에 올라온 기사들을 확인한 결과 국민일보, 노컷뉴스,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경제, 한국일보, MBN 등이 피해자의 나이대를 명시했고, 심지어 경남신문, 뉴스1, 문화일보, 아주경제, 조선비즈, YTN은 피해자의 직책이나 이력 등을 보도하기도 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팩트가 맞지 않는 내용, 피해자에게 집중된 보도들에 대해 상담소가 계속 대응해 나가고 있다. 처음 보도자료를 낼 때만 해도 부산시와 싸울 줄 알았는데 언론사들과 싸우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회의감이 들 정도”라며 “가해자의 인정과 사퇴, 이후 대책으로 포커싱해야 하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피해 일시와 피해 내용, 공증 내용까지 물어본다. 심지어 추측성 보도를 하고 ‘더듬어민주당’, ‘몹쓸 짓’ 같은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단어를 헤드라인에 쓰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