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자신있게 소신을 밝히던 후보가 일순 당황하는 기색이다. 증거 자료를 들이대는 패널의 치밀한 준비에 빠져나갈 말이 군색한 모양이다. 이런 것이 바로 TV토론의 묘미다. 출연자의 표정과 목소리의 변화까지 생생하게 안방으로 전달된다.
대통령 선거를 두어 달 남겨두고 요즘 공개적인 선거 토론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로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널리 알리고 신념과 비전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TV토론은 전국 각지의 유권자들이 화면으로나마 여러 후보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정책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이런 기회가 많을수록 유권자가 후보들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더라' 또는 ‘무슨 일을 했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에만 의존해 투표장에 들어가야 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후보들은 TV토론에 적극적으로 나서 솔직하게 자신의 정책과 국정운영 목표를 밝히는 것이 의무다. 마찬가지로 방송사들은 대통령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공정하고 다양한 토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공기로써의 책임이라 하겠다.
단순히 이런 책임과 의무의 이행이라기보다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이 5년만에 한번씩 볼 수 있는 즐거운 말의 잔치가 됐으면 좋겠다. TV토론은 온 국민이 다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훌륭한 교양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TV토론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 말로 표현하는 법과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TV토론은 유세장에 청중을 모으느라 편법이 동원되는 재래식 선거 운동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운동장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의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하는 인원을 동시에 불러모을 수 있다.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국정 운영 정책을 상대 후보와 당당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어떤 프로그램보다 훌륭한 볼거리다.
우리는 이미 지난 97년 대선에서 TV토론의 영향력과 효과를 경험했다. TV토론은 자칫 후보들의 외양만 판단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안목은 양복 색깔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넥타이가 말의 잔치를 더욱 즐겁게 꾸며주는 장치일 뿐 대통령 후보의 자질을 가리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만큼 높아졌다. 보기 좋고 먹기 좋을 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유익한 내용들로 잘 차려진 말의 잔치를 다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