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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딛고 일궈낸 '작은 승리'

CBS파업 이모저모

서정은 기자  2002.10.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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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넘겼지만 불씨 여전…“언제든 다시 모일 것”





“한도 맺히고 서러움도 많았는데, 우리 함성 한번 질러봅시다. 고생 많았습니다.”

CBS 재단이사회의 서면투표가 공식 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7일 오후 CBS 목동사옥 2층에서는 ‘작은 승리’를 축하하는 CBS 노조의 정리 집회가 열렸다. 이날 황명문 노조위원장은 “오늘 드디어 서면투표 부결이라는 낭보가 있었다”며 “일주일간의 힘든 투쟁 속에서 CBS의 미래는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봤다.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CBS는 우리가 지킨다는 각오로 힘을 내자”며 조합원들을 격려했다.

CBS 재단이사회가 ‘사장청빙위원회’ 구성 등 지난해 6·26 합의를 무시하고 사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를 소집한 지난달 30일, CBS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하고 이사회를 저지했다. 그러나 재단이사회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서면투표 용지를 이사들에게 발송, 서면투표 찬반과 사장·이사장 선출을 동시에 묻는 무리수를 강행했다.

서면투표와 권호경 전 사장의 3연임을 막기 위해 조합원들은 또다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조합원 200여명은 각 교계와 교단으로 흩어져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지하실에서 금식 기도회를 갖고 이사들의 상식적인 판단과 CBS의 정상화를 호소했다.

그러나 예장통합 총회장인 최병곤 기록이사가 예장통합 파송 이사 4명의 투표용지를 모두 백지위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합원들 가슴에는 절망과 배신감이 들어찼다. “사장을 편지로 뽑겠다는 것도 모자라 투표권까지 위임한다는 게 말이 되나. 고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금식과 추위로 지친 심신보다 “모든 상황은 이미 끝났다”는 절망감이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4일 오전 11시, 조합원들은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 있는 최병곤 총회장실로 모여들었다. 이번 서면투표의 절차상 문제점과 언론사 사장을 편지로 뽑는 비상식적 행태, CBS의 정상화를 위한 6·26 합의 이행 등 최 이사를 상대로 오랜 설득이 이어졌다. “50년 역사의 CBS에서 각종 불법과 비리가 판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불법과 비리를 눈감는다면 세상을 향해 어떻게 빛과 소금을 말할 수 있는가.”

처음엔 “내 투표용지만 가져왔다”며 부인하던 최 이사도 CBS 정상화를 염원하는 조합원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했다. 결국 최 이사는 6시간 동안의 면담끝에 서면투표의 절차상 하자를 인정했고 이번 투표를 원천무효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7일 오전, 서면투표 부결이 공식 확인됐다. 약속대로 예장통합이 서면투표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반대했고 일부 이사들도 반대표를 던져 결국 재적이사 4분의 3의 찬성표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서면투표의 무산으로 한 고비는 넘겼지만 재단이사회가 권호경 전 사장의 3연임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CBS 개혁과 정상화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최대 위기는 넘겼으나 상황은 다시 원점일 뿐이다. 칼날을 쥔 재단이사회가 또 어떻게 칼날을 휘두를지 모른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모일 것이다.”

8일 오전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는 조합원들은 ‘빛과 소금의 방송’ CBS의 정상화를 위해 이렇게 또다시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서정은 기자 pund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