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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사회 안팎 향한 외침 '우리의 주장'… 언론 역사와 시대상 함께 조명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 21년치 분석]
김대중·노무현 정부땐 '신문' 화두
이명박 정부땐 언론정책 날 선 비판
박근혜 정부땐 '세월호·여성' 자주 써

문재인 정부 화두 된 '언론개혁'도
이미 김대중 정부때부터 당위성 주창

김고은 기자  2020.09.24 1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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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의 사설(社說)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주장’은 한국기자협회의 상설기구인 편집위원회에서 작성한다. 창간 초기에는 ‘광장’이란 제목으로 실렸으나, 이후 우리의 주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줄여서 ‘우주’라고 부른다.


우주는 기자사회 안팎을 향해 던지는 날 선 외침이다. 잘못된 관행과 비리 같은 뉴스룸 내부의 오작동 문제를 매섭게 비판하는 동시에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저항하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기자협회 소속 회원(사)이 연루된 문제라고 비껴가는 일도 없었다. 때때로 반발을 사기도 하고 그래서 반론 글을 게재한 적도 있지만, 우주의 외침은 꺾이거나 잦아들지 않았다.


기자협회보는 지령 2000호를 맞아 그동안 우주를 통해 울려 퍼진 ‘천 번의 외침’을 분석했다. 2000년 이전에 발행된 기자협회보는 거의 데이터베이스화가 안 되어있고 합본호나 축쇄판으로만 남아 있어, 웹에서 검색 가능한 1000호(1999년 5월10일자)부터 지난 9월9일 나온 1999호까지 1000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약 157만 자로 기록된 1000번의 우주는 시대 흐름에 따라, 정권에 따라 변화를 보여왔다. 지난 20여 년간 우주에서 무엇을 많이 언급했는지, 그것이 시대나 정권에 따라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는 것은 우리 언론사(史),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변천사를 되짚어 보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분석 방법은 이렇다. 우선 21년치 우주를 모두 한 파일로 정리한 다음, 김대중 정부부터 현 문재인 정부까지 다섯 정부 시기별로 분리했다. 분석 기간이 1999년 5월10일부터여서 김대중 정부 시기는 3년9개월치만 포함됐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이후 3년4개월치만 대상이 됐다. 박근혜 정부 시기는 2017년 5월3일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했다.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는 통계프로그램 R을 활용했다. 한글 자연어 분석 패키지(KoNLP)와 한글형태소 사전(NIADic)을 사용해 각 정부 시기별 우주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를 추출한 뒤 ‘언론(사)’, ‘기자’, ‘우리’ 같이 공통으로 많이 등장하거나 의미 없는 단어들은 제외하고 각 300개를 뽑아 워드클라우드로 만들었다.


그 결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신문’이었는데 박근혜, 문재인 정부 들어선 ‘보도’로 바뀐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신문산업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일부 신문이 두 정부와 긴장 혹은 갈등 관계에 있었던 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사장’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집권하자마자 정연주 당시 KBS 사장 해임 절차를 밟더니 YTN 사장에 대통령 후보 시절 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임명하고, 아리랑TV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도 특보 출신들을 줄줄이 임명했다. 곧이어 MBC에선 엄기영 당시 사장을 내쫓고 김재철 사장을 임명했다. MBC의 파란만장한 수난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당시 KBS, MBC, YTN 등에선 ‘공정방송’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는 장기간 파업이 이어졌다. 방송사 이름이 이 시기 우주에 자주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업이란 단어는 242번, 해직이란 단어는 131번 언급됐다.


우주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우주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된 횟수도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약 2배에서 15배 정도로 많았다. 이명박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 약속이 ‘언론장악’으로 표변하고, 한편으론 특정 언론에만 ‘프렌들리’한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언론이 오히려 정부에 자발적으로 유착하는 ‘프렌들리 프레스(Friendly press)’”를 꼬집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개혁’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개혁은 김대중 정부 때 303번, 노무현 정부 때 166번 언급됐는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는 각각 20번, 33번으로 뚝 떨어진다. 반대로 ‘장악’이란 단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15번 남짓 언급됐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10배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언론을 개혁의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는 장악의 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현 정부하에서 중요한 화두가 된 언론개혁은 앞서 김대중 정부 시절 던져졌다. ‘DJ의 입’으로 불렸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취임 직후 “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의 개혁을 논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우주는 “현재의 언론이 개혁돼야 한다는 당위성은 우리 언론계 스스로도 분명히 인정”한다면서도 “언론개혁이 정부주도의 밀어붙이기나 강압에 의한 것이 되면 더 큰 부작용만 가져온다는 점은 이미 역사가 교훈한 바”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우주는 언론개혁을 소리 높여 주창했다. “언론개혁은 언론인들의 취재 보도를 향상시키는 방향, 진실과 공정한 보도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개혁의 적은 언론 내부에 있었다. ‘촌지 근절’ 문화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향응·접대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1325호(2006년 4월19일자) 우주의 제목은 <‘기자골프’ 윤리강령 만들자>였다. 노무현 정부 때 우주에서 ‘골프’란 단어가 40번 가까이 언급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시 우주는 이렇게 일갈했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은 골프장에서도 기다리고 있다.”


언론역사에서 중요했던 순간들, 시대상을 반영하는 단어들도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세무조사’가 138번 언급됐는데, 당시 진행됐던 언론사 세무조사와 이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2001년 당시 7년 만에 이뤄진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언론사주 3명이 구속 수감됐다. 우주는 “언론사 세무조사는 국민의 기본 의무인 납세 형평성을 위해서도 지극히 당연한 조처”라면서도 ‘언론 통제용’이라는 의혹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세무조사를 정기화하는 등 공정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엔 세월호를 빼놓을 수 없다. 무려 130번이 언급됐다. ‘보도 참사’라고까지 불렸던 세월호 사건 당시 언론 보도는 기자들에게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주는 세월호 교훈을 잊지 않고 언론이 변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젠더 이슈도 최근 정부 들어 많이 다뤄졌다. ‘여성’을 언급하는 일은 이명박 정부 시기까지만 해도 별로 없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 61건으로 급격히 많아졌고, 문재인 정부 들어선 지금까지만 92번이 언급됐다. ‘젠더’도 부쩍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디지털도 박근혜 정부 시기부터 많아진 이슈다. 미디어 환경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방증이다. 포털문제도 많이 다뤄졌는데,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 들어서만 네이버는 80번이나 호출됐다.


감염병 문제를 다룬 횟수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 메르스가 언급된 건 13번이었는데, 올해 들어 코로나가 언급된 횟수는 그의 3배인 47번이다. 9개월째 장기화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 그리고 그로 인한 기자들의 취재·보도와 일상의 변화, 언론의 책임 등을 주목해서 봤다는 뜻이다.


‘신뢰’가 언급된 횟수도 주목할 만하다. 현 정부 들어 언급된 게 105번으로 가장 많다. 신뢰와 직결되는 ‘오보’라는 단어 역시 67번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고, ‘가짜뉴스’도 60번이 사용됐다. 최근 1~2년 사이에만 ‘검언유착’ 의혹, 주요 사건 관련 오보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가장 최근호 우주는 이렇게 글을 끝맺었다. “언론에 묻는다. 오늘 보도는 팩트입니까.”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