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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언론문건' 보도 판단기준 '아리송'

과거 사례 비추어 '이례적'…단순처리 그쳐

김상철 기자  2002.10.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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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된 한나라당의 ‘언론대책문건’은 다른 언론문건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한국일보 경영진과 편집국 간부 성향분석, 편집방향과 접근방안 등이 거론된 이 문건은 ‘당사자’인 한국일보가 주요하게 보도했을 뿐 한겨레를 제외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단순 처리했다.

이전의 ‘언론문건’ 보도에 비해서도 일회성 보도에 그친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신문사 간부는 “그 정도 수준은 언론과 접촉하는 기업체에서도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민주당도 그런 작업은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성향 분석 자체를 언론탄압 기도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문건 보도’는 지난 사례와 대비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까운 사례로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집에서 발견, 지난 4월 검찰에 의해 공개된 이른바 ‘이수동 문건’을 들 수 있다. 당시 검찰측 표현대로 “지금까지 발견된 언론개혁 관련 문건 가운데 가장 조악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가장 저급한 언론관을 드러낸 문건”임에도 불구,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관련 보도는 2개월 여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최종 시나리오가 채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음지의 정략가들과 모사들이 참여해서 결국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라는 작품의 밑그림을 만들어냈을까를 생각하면 온 몸이 오싹해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시사저널이 보도한 ‘국민의 정부와 언론전략 기조’ ‘최근 언론논조 분석’ 등 3건의 문건도 파문을 몰고 왔다. ‘언론전략 기조’ 보고서는 서울지역 10개 신문을 반여, 중립, 친여로 나눠 보도를 분석했으며 ‘최근 논조분석’에서는 ‘조선, 동아, 중앙, 문화 등 비판적 언론들의 비판 수위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의 언론관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면서 “언론통제를 언론개혁으로 포장하려는 권력의 어떤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문건은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과 맞물려 한동안 지면에서 쟁점으로 부각됐으며 문건 작성자, 유출경위 등을 둘러싼 여야 공방, 한나라당의 국정조사 요구 등 관련 보도가 한달 내내 이어졌다. 반면 지난 2000년 12월 언론대책수립 방안이 포함된 한나라당의 이른바 ‘대권문건’이 내일신문을 통해 공개됐을 때 관련 보도는 이전에 비해 양적으로 차이를 나타냈다. 일례로 지난해 시사저널 폭로 이후 2월 한달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관련 보도는 각각 21건, 28건이었으나 2000년 12월 한달간 한나라당 문건 보도는 8건과 12건에 그쳤다.

한나라당의 ‘대권 문건’은 언론사 논설 집필진 성향파악 및 관리방안으로 적대적 집필진의 비리 축적과 활용방안, 우호 언론그룹의 조직화 필요성 등이 거론돼 있었다. 대부분의 신문이 사설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잡고 보자는 단세포적인 발상” “정치세력의 ‘언론통제’ 유혹이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말해주는 사례“라고 비판했으나 관련 기사는 여야 공방을 단순 중계하는 데 머물렀다.

언론노조 민실위는 지난 11일 “이번 한나라당의 문건 내용은 과거 조선일보 등이 비판했던 ‘민주당식 언론대책문건’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데도 ‘한국일보 대책문건’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짝이 없다”며 “문제는 ‘누가 만든 문건이냐’ ‘누구에게 유리하냐’가 뉴스가치판단의 기준이라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