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지난 17일 오전(한국시간) 북한이 자체 핵개발을 시인했다고 발표하자 한반도 주변정세는 순식간에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미 국무부의 발표는 제7차 장관급회담(8.12~14, 서울)에서 남북교류의 큰 틀을 마련한 뒤 두달동안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회의, 제4차 적십자회담, 제5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부산아시안게임 북측 참가 등으로 화해무드에 젖어있던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북녀 신드롬’까지 만들어낸 북측 응원단이 만경봉-92호를 타고 돌아간 뒤 이틀만에 터진 북핵 파문은 우리 국민들의 대북관과 한반도 정세인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미 국무부의 발표를 둘러싼 국내외 언론 보도에 대해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국내 언론은 물론 각국 언론들은 미 국무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앞다퉈 보도함으로써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9일 남북장관급회담 출발에 앞서 가진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개발계획이 시설단계인지, 구상단계인지, 무기개발단계까지 간 것인지 정확한 판단을 못내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북한 핵개발 의도에 대한 분석이 끝났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이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이 순순히 시인한 점이 중요하다”면서도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쉽게 말해 대북 주무부처를 총괄하는 통일부 장관도 북핵개발 관련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데 앞서 가는 언론보도는 국민들에게 불안감만 가중시키고 있다.
17일 한미 정부가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는 사항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남긴다. 미국은 이미 99년 첩보수준이지만 북한 핵개발 상황을 포착해 놓았는데도 ‘USA투데이’가 취재한 점을 들어 현지시각으로 한밤중에 발표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다음날 발간된 해당 신문 북한관련 기사에는 정작 경천동지할만한 내용이 없고 핵개발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과연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면 무엇을 시인했는지, 구체적으로 내용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회의록 공개여부를 떠나 그와 같은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와 당시의 회담장 분위기 등도 정확하게 알려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했다면 ‘대담한’해결방안도 함께 제시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뉴욕 타임스가 20일자로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북측에 중유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보도해 북핵파장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치닫고 있다. 그러나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북한이 켈리 특사 방북시 제네바합의가 무효화되었음을 통보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조선신보는 부시행정부가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포용정책으로부터 적대정책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제네바합의는 켈리 방북이전에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북미 양측이 공식적으로 제네바합의를 파기하지 않은 채 서로 떠넘기기에 혈안에 됐고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는 이를 거들고 있는 셈이다. 남북이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도로연결 착공식을 거행하고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나온 ‘메가톤급’ 북핵개발 발표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전망기사가 나올 때이다.
국민들은 1년 이상 전쟁위기설을 퍼뜨리다 사찰 결과 ‘텅빈 동굴’ 확인으로 끝난 금창리 사건의 해프닝을 더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